'사냥의 시간' 넷플릭스서 23일 공개…'파수꾼' 윤성현 감독 신작
디스토피아 속 청년들,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밑바닥 삶에서 벗어나 하와이 바닷가에서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삶을 꿈꾸던 청년들. '인간답게 살고 싶다'던 그 꿈은 애초 무리였을까.

그들이 결국 마주한 현실은 푸른 빛이 넘실대는 바다가 아니라, 붉은빛으로 물든 악몽 같은 지옥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 '사냥의 시간'이 23일 오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극장 개봉일을 잡지 못해 넷플릭스 '직행'을 택했다가 법정 공방에 휘말리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시청자들과 만났다.

영화는 한탕을 노리던 청년 넷이 정체불명의 추격자를 만나면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전작 '파수꾼'(2011)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10대 소년들을 통해 인간 본성을 날카롭게 파고든 윤성현 감독은 이번에는 청년들의 삶에 주목했다.

디스토피아 속 청년들,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배경은 IMF 금융 위기로 희망이 사라진 도시. 하늘에는 뿌연 매연이 감돌고, 거리에는 정리해고를 규탄하는 시위대 구호 소리가 울려 퍼진다.

폐허로 변한 뒷골목에는 노숙자가 넘쳐나고, 벽에는 형형색색의 그라피티로 가득하다.

물가가 폭등해 돈의 가치는 폭락하고, 마약과 총기 범죄가 일상화된 사회, 그야말로 디스토피아다.

감옥에서 갓 나온 준석(이제훈 분)은 평소 꿈꾸던 삶을 살기 위해 친구 장호(안재홍)와 기훈(최우식), 상수(박정민)에게 불법 도박장을 털자고 제안한다.

계획대로 일이 척척 진행되는가 싶더니, 이들 앞에 정체불명의 추격자가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틀어진다.

추격자는 턱밑까지 쫓아와 총구를 들이대고, 이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디스토피아 속 청년들,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안감과 막막함이다.

자신들을 쫓는 사냥꾼이 누군지, 왜 쫓는지 이유도 모른 채 도망 다니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는 요즘 젊은 세대의 초상과 겹친다.

서사는 단조롭고 직선적인 편이다.

은유 역시 직설적이다.

한 소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감정의 결을 켜켜이 쌓아갔던 '파수꾼'과는 궤를 조금 달리한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윤 감독은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생존'에 관한 은유가 담긴 영화"라고 소개했다.

디스토피아 속 청년들,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00억원 가까운 순제작비가 들어간 상업 영화로서 본분은 다하는 편이다.

폐허가 된 도시를 무대로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액션과 서스펜스가 단연 돋보인다.

한국 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총기 액션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주제 의식을 뒷받침해주는 황폐한 도시 모습 등 비주얼에도 상당한 신경을 썼다.

섬세한 감정 연출과 의문 부호에 대한 답을 쉽게 내주지 않는 미스터리 방식의 스토리텔링 등 윤 감독의 장기도 빛을 발한다.

영화는 회색빛과 붉은빛으로 가득하다.

현실이 회색빛이라면, 추격전이 시작된 뒤부터는 온통 붉은 빛이다.

한바탕 악몽을 꾼 듯한 느낌을 준다.

이제훈, 박정민, 조성하 등 '파수꾼'에서 윤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이 다시 출연했다.

그래서일까.

'파수꾼' 속 10대들이 커서 마주한 세상이 '사냥의 시간'인 듯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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