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같이 연기, 큰 의미 없어…수차례 연극서 함께 해"
'아무도 모른다' 박훈 "악역 전형성에 빠지고 싶지 않았어요"
백상호는 착한 어른일까, 나쁜 어른일까.

SBS TV '아무도 모른다' 애청자였다면 한 번쯤 품어봤을 의문이다.

극 중 밀레니엄 호텔 대표인 백상호는 사람을 가차 없이 죽이고 악랄하고 잔인한 주문도 서슴지 않는 악당이다.

'나쁜 어른'이 분명함에도 극 초반부엔 다친 고은호(안지호 분)를 걱정하거나 아이들에게 수더분하게 다가가는 모습 때문에 종잡을 수 없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백상호를 연기한 배우 박훈(본명 박원희·39)은 최근 유선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욕심으론 백상호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악역의 전형성에 빠지고 싶지 않았어요.

악역이면 목소리를 깔아야 할 것 같고 인상을 써야 할 것 같지만 이런 함정에 빠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밝은 신에서는 그냥 밝게 표현했어요.

그러면 나중에 악한 표현을 했을 때 앞선 장면과의 낙차 때문에 더 두려워질 거라고 생각했죠. 초반에 아이들을 만나면 더 아이 같은 시선에서 연기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
극 중 순한맛 컵라면을 은쟁반 위에 놓고 먹고 캔커피는 찻잔에 따라 마시는 행동에 대해 그는 "겉은 화려하게 포장돼 있지만, 알맹이는 그렇지 못하다는 이중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박훈은 여기에 착안해 직접 동묘 시장을 찾아가 백상훈이 입을 의상을 사들였다고 한다.

화려하되 이상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은 옷들이었다.

'아무도 모른다' 박훈 "악역 전형성에 빠지고 싶지 않았어요"
박훈은 백상호라는 캐릭터뿐만 아니라 드라마 자체에 대해서도 "그동안 너무 전형성에 빠져있지 않았나, 타성에 젖어 있지 않았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아무도 모른다'는 분명 대중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쉽게 '떡밥'을 회수하지 않는 탓에 극이 불친절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익숙한 화법이 가장 쉽기도 하고, 또 많은 분이 좋아해 주세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조건 그런 화법만 표방한다면 상술이지 예술은 아니겠죠. 우리 드라마는 관계성에 중점을 두는 작품이다 보니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또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그 인물들이 연결되는 지점도 조금씩 풀려요.

이런 게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이런 화법의 드라마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의 방식만 정해놓고 답습하면 창작자 입장에선 타성에 젖은 행동이겠죠."
그는 "인물이 이해되는 순간을 넘어서면 본격적인 재미에 빠져드는 터닝포인트가 생겨난다.

그 이유로 시청률이 (10% 안팎으로) 유지돼 온 것 아닐까"라며 "이젠 이런 이야기를 해도 시청자들이 재미를 느끼니 만드는 사람들도 조금 더 사고방식을 열고 만들어도 되겠단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도 모른다' 박훈 "악역 전형성에 빠지고 싶지 않았어요"
극 중 밀레니엄 호텔 총지배인 배선아 역을 맡은 박민정(38)과는 실제 부부 사이다.

부부가 한 드라마에 동시에 출연한 데 대해 박훈은 "남편과 부인이 만나 연기하는 게 신기할 수도 있지만 우리 둘은 그냥 배우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큰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이미 연극에서 상대역으로 굉장히 많이 호흡을 맞춰봤어요.

2∼3개 작품을 같이 했는데, 한 작품당 100회 정도 공연하니까 거의 200∼300회를 같이 한 거죠. 연습까지 하면 더 늘어나고요.

그러니 얼마나 서로를 잘 알고 잘 표현하겠어요(웃음). 다만 작품 들어갈 때 보시는 분들이 몰입에 방해되는 부분이 있을까 봐 걱정돼서 우리 관계를 굳이 알리지는 말자고 얘기했어요.

결과적으로 저희 관계는 부수적인 흥미로 느끼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
박훈은 지난해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죽었다가 계속 살아나는 '차좀비' 캐릭터로 대중에 각인됐다.

'아무도 모른다'에 출연해 추가로 얻게 된 게 무엇이 있을까 물었더니 "일단 말을 한다"라며 웃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어떤 분들은 대사 없이 죽기만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아무도 모른다'를 통해 그 부분은 충분히 극복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이 또 다른 한계를 던져줬겠죠. 저에겐 첫 악역인데, 어떤 분들은 악역 배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것 또한 제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겠죠. 배우는 어쨌거나 자기가 가진 한계를 계속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때론 아쉬운 소리나 욕도 듣겠지만 다시 도전해야 하고. 나중에 '박훈 고생했다' 소리만 들어도 엄청나게 만족할 것 같습니다.

"
'아무도 모른다' 박훈 "악역 전형성에 빠지고 싶지 않았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