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00세 맞아 삶의 잔잔한 기록 '백세 일기' 펴내

"내 나이 100세. 감회가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산과 자연은 태양이 떠오를 때와 서산으로 넘어갈 때 가장 아름답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100세에 내 삶의 석양이 찾아들 때가 왔다.

아침보다 더 장엄한 빛을 발하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

"
평범했던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 소소한 일상이 더욱 특별한 철학자가 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다.

1920년생인 김 교수는 이달 23일로 만 100세를 꽉 채운다.

이를 계기로 새 저서 '백세 일기(百歲日記)'를 펴내는 감회가 남다르다.

한 세기 무게가 담긴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고백
"오래 살기를 잘했다.

" 인생의 석양이 찾아드는 지금, 여전한 총기로 성실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채워나가는 노교수의 고백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김 교수는 나이 40이 되면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을 찾아 성장하고 새로워지며 삶의 의미를 얻고자 일기 쓰기를 한 것이다.

지금도 매일 밤이면 작년과 재작년의 일기를 읽으면서 오늘의 일기를 새롭게 쓴다.

그렇게 충만한 삶의 시간을 새기고, 어제보다 더 새로운 내일을 꿈꾼다.

김 교수는 "일기는 나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고 고백한다.

이런 삶의 습관과 철학이 신간 '백세 일기'로 결실했다.

한 세기를 살아온 철학자가 70편의 글들을 소박하지만 특별한 '일상', 온몸으로 겪어온 격랑의 '지난날', 100세 지혜가 깃든 '삶의 철학', 고맙고 사랑하고 그리운 '사람'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엮어냈다.

이번 책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한 일간지에 연재한 '김형석의 100세 일기' 원고에 몇 편의 글을 추가한 것이다.

한 세기 무게가 담긴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고백
김 교수의 100세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매일 아침 6시 반에 토스트 반 조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놀랍게도 하루 30분씩 매주 3회 수영을 하고 창문 밖으로 넘실대는 구름을 바라보며 소박한 즐거움에 푹 빠져든다.

숲길 산책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년 동안 연세대 근처 연희동에 살면서 이곳 안산의 산지기가 다 돼버렸단다.

책의 제1부 '한번 멋지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는 이런 일상을 엿보게 한다.

제2부 '석양이 찾아들 때 가장 아름답다'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6월 민주항쟁 등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겪어온 지난날을 회고한다.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에 자퇴를 선택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던 중학교 시절의 경험을 비롯해 일곱 달 되는 아들을 업은 아내와 바다를 건너 탈북했던 일, 전두환 정권 시절에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가졌던 눈물의 고별강연 등이 실려 있다.

100세 연륜에 걸맞게 3부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마음으로 남는다'에서는 옹글게 익어온 사색의 열매들을 만나게 된다.

김 교수는 소장하던 골동품 도자기에서 "인생은 과거를 기념하기 위한 골동품이 아니다.

항상 새로운 출발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새롭게 얻었고, 만추에 떨어져 가는 잎사귀를 바라보면서는 "새싹이 피기 위해서는 자리를 양보해야 하고, 낙엽이 되어서는 다른 나무들과 숲을 자라게 하는 비료가 돼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제4부 '더불어 산 것은 행복을 남겼다'에는 인생 역정에서 만나온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 담겼다.

도산 안창호, 인촌 김성수, 고당 조만식, 시인 윤동주 선생은 물론 30년 동안 머리를 다듬어준 이발사 아저씨, 홈스테이로 수년간 함께 지낸 독일 교환학생의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들려준다.

그는 "더불어 산 것은 행복을 남겼다.

가장 소중한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감사의 뜻을 나누며 사랑을 베푸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인생의 행복한 의무다"고 말한다.

평북 운산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평양 숭실중과 제3공립중을 나왔으며, 일본 조치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고향에서 해방을 맞이했고, 1947년에 탈북해 7년간 서울 중앙중고 교사와 교감으로 근무했다.

1954년부터 1985년까지 31년 동안은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봉직하며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해왔다.

저서로는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백 년을 살아보니' 등이 있다.

김영사. 232쪽. 1만4천800원.
한 세기 무게가 담긴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고백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