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 에비뉴엘아트홀에 설치된 케이웨일의 ‘샹들리에-드롭’.  /롯데갤러리 제공
서울 잠실 에비뉴엘아트홀에 설치된 케이웨일의 ‘샹들리에-드롭’. /롯데갤러리 제공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원에서 ‘아트&테크놀로지’를 전공한 양원빈은 로봇을 미술 영역에 끌어들였다. 로봇을 인간, 동물, 미생물과 같은 하나의 종(種)으로 분류하면서 야생동물들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갖고 있는 보호색 개념을 로봇에 반영했다. 그리고 상상했다. 만약 로봇이 신문지, 우산, 버려진 종이컵과 같이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쓰레기들의 보호색을 띤다면? 2015~2016년 한국-호주 교류전으로 주목받았던 국립현대미술관의 ‘뉴 로맨스-예술과 포스트휴먼’ 전에서 구겨진 종이와 같은 쓰레기가 전시장을 돌아다니게 한 것은 이런 상상을 실현한 결과였다.

창의성이 펄떡이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주목받고 있다. 서울 삼청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0 금호영아티스트’, 롯데갤러리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개최 중인 컨템포러리 아티스트 그룹 왓더펀맨(WTFM)의 대표 작가 펜킹과 케이웨일의 ‘러닝 프로세스(Learning Process)’전, 서울 자하문로 웅갤러리의 ‘The Dimensional: 조금 특별한 조형에 대하여’가 그 현장이다. 버려진 재료가 작품으로 재탄생하고 형광등이 설치작품으로 거듭났다. 주변 사물과 풍경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도 눈길을 끈다.

양원빈의 ‘쓰레기 로봇’은 웅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2015년 당시의 콘셉트를 적용하되 새롭게 제작한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이고 있다. 액체 상태의 유리에서 생명력을 느낀다는 유충목 작가는 유리로 만든 ‘별’ 시리즈를 내놓았다.

작가 오묘초는 자신이 일상생활을 하는 서울 을지로 인쇄소 골목에서 버려진 나무패널을 주워 작품을 제작했다. 인쇄를 위해 동그라미, 네모, 직선, 세모 등 다양한 모양이 파여 있는 ‘도무송’의 기하학적이면서 불규칙한 도형을 생동감 넘치는 예술품으로 바꿔 놓았다. ‘도무송’은 영어 ‘Thomson’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톰슨 프레스 머신을 이용해 인쇄물을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내는 방법을 말한다. 원하는 모양을 잘라내고 남은 패널에서 작품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열린다.

다음달 5일까지 열리는 ‘2020 금호영아티스트’에서는 조민아, 김세은, 노기훈, 박아람 등 4명의 개인전을 4개 층에서 열고 있다. 조민아는 ‘빼기, 나누기 그리고 다시 더하기’라는 전시를 통해 모순과 부조리가 공존하는 사회구조를 상징하는 동양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한쪽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하는 대작에 사람, 죽어가는 동물, 화살, 무너진 건물 잔해, 잘린 나무 등 언뜻 봐선 이해하기 힘든 구성물들로 다양한 상상을 자극한다. 갈등과 분열,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가 한 화면에 다층적으로 얽혀 있다.

각기 다른 공간을 관찰하고 이를 화면에 옮기는 과정에서 카메라 앵글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듯이 대상과의 거리를 조정함으로써 운동성을 부각한 김세은의 ‘잠수교’, 엑셀 프로그램의 가로축과 세로축이 만나 셀(cell)을 만들듯이 회화의 색이 일종의 색인 역할을 하도록 한 박아람의 ‘타임즈’, 일본 요코하마 사쿠라기초역에서 도쿄의 신바시역을 향해 걸어가며 야경을 촬영한 노기훈의 사진작업 ‘달과 빛’도 만날 수 있다.

아티스트 겸 일러스트레이터인 펜킹과 가구 및 인테리어 디자이너 케이웨일은 첫 듀오전인 ‘러닝 프로세스’에 드로잉, 페인팅, 조각, 설치작품 40여 점을 내놓았다. 전공과 장르가 다른 두 작가의 섞임에서 오는 긴장감과 시너지가 느껴진다.

펜킹은 빛바랜 듯한 낙서와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그라피티의 흔적들,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가구와 조명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선보인다. 블루, 핑크, 퍼플이 서로 뒤엉켜 팽팽하게 밀랍처럼 가득 채워진 펜킹의 화면은 시각적으로 강렬하면서도 추상적 에너지로 가득하다.

케이웨일은 기원이 다른 오브제와 가구들을 수집해 부수거나 조각 내고, 다시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우연과 필연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찾아가는 설치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공장에서 제작된 규격화·단순화된 산업형광등과 형광튜브를 조합해 제작한 거대한 샹들리에는 압도적인 볼륨과 수직적 구성이 주는 긴장감과 달리 빛이 만드는 선과 간격, 리듬 덕분에 공간을 시적이고 낭만적으로 바꿔놓는다. 관객 움직임에 따라 샹들리에 조명이 켜지고 꺼지면서 연출해내는 시각적 리듬도 재미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