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서울 한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임모(38)씨가 보내주신 제보를 토대로 연합뉴스가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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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관이 인력사무소도 아니고…."
서울 한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임모(38)씨는 지난 8일 오후 6시께 사내 메일함으로 들어온 서울시 사회복지관협회 공문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협회가 200곳에 이르는 사회복지시설을 대상으로 보낸 공문에는 각 복지관 인력 중 절반을 재난 긴급생활비를 접수하는 동 주민센터에 지원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원 인력 명단을 9일 오후 1시까지 제출하라고 했다.

임씨와 같은 사회복지사들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임씨는 "일부 사회복지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휴관에 들어갔지만 직원은 평소와 똑같이 출근하거나 재택근무하고 있다"며 "기존 업무에 더해 코로나19로 인한 추가 업무도 생겼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자치구 내 무료 급식소와 복지관이 문을 닫으면서 밥줄이 끊긴 노인들을 위해 도시락을 일일이 포장해 배달하고, 코로나19 감염 위험성이 높은 노약자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 새로 생긴 일이다.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기 힘든 자치구 내 외국인을 위해 마스크를 챙기는 것도 주요 업무다.

이전과 달리 자원봉사자의 손길도 끊겨서 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20여명이 자치구의 복지 관련 대부분 업무를 해결해야 했다.

임씨는 "무엇보다 인력의 절반을 차출할 정도로 큰일이라면 최소한 복지관과 협의를 거쳐서 진행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상급기관이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다음날 점심까지 파견 명단을 제출하라고 하는 게 갑질이 아니고 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만약 우리가 바쁘면 주민센터 인력 절반을 보내 달라고 해도 되는 거냐"고 반문했다.

[OK!제보] "인력사무소 아닌데…" '사회복지사 주민센터 차출' 요구 해프닝
이와 관련,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는 일방적인 처사라고 비판했다.

주민센터와 복지관은 업무 연관성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복지관 인력 파견으로 생기는 업무 공백에 대한 대안도 없다는 지적이다.

신현석 지부 조직국장은 9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인력 차출 요구는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예민한 문제인 만큼 적어도 논의 정도는 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신 국장은 "얼마 전에는 휴관에 들어갔다고 해서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불편하다'는 민원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시 공문을 받기도 했다"며 "도시락 배달 등 새 업무가 생기면서 과부하가 걸리는 곳도 있는데 현장은 전혀 살피지 않은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서울시는 인력 파견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지역돌봄복지과 관계자는 "급한 상황에서 공문을 보내다 보니 오해 소지가 있었다"며 "반드시 복지관 절반 인력을 보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력 파견이 여의치 않은 복지관이라면 굳이 차출하지 않아도 된다"며 "복지관 관계자들에게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드렸고 해명 자료도 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해당 공문을 보낸 서울시 사회복지관협회 관계자는 "강제성을 띤 것은 아니며 복지관 업무가 먼저"라며 "아무래도 사회복지사들이 상담 업무에 익숙하기에 인력 지원을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소통 과정에서 작은 오류가 있을 뿐이지 복지관 인력을 차출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라고 거듭 당부했다.

정순돌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 약자를 보살피는 게 본연의 임무인 사회복지사를 이런 식으로 유휴 인력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라며 "코로나19 사태로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는데 이들의 공백이 생긴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이는 소외계층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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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