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백남준 '진화, 혁명, 결의'
백남준(1932~2006)은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을 선보인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였다.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198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작품을 요청받은 그는 혁명의 대표적 인물 8명을 정해 ‘전자요정’으로 명명하고, 8개의 TV로봇 작품을 제작했다. 이를 8개의 판화 작업으로 재해석한 것 중 하나가 ‘진화, 혁명, 결의’다.

백남준은 혁명가로 의인화한 8대의 로봇에 그들의 이름과 함께 각각의 부제를 붙였다. 장 폴 마라는 ‘암살’, 루소는 ‘노자 자연’, 올랭프 드 구주는 ‘프랑스 여성’, 조르주 당통은 ‘웅변’, 볼테르는 ‘이성과 자유’라는 키워드를 받았다. 다비드에겐 ‘문화혁명은 예술혁명을 전제로 한다’, 로베스피에르에겐 ‘혁명은 폭력을 정당화하느냐’는 부제를 달았다.

드니 디드로에게 붙인 ‘여씨춘추(呂氏春秋) 일자천금(一字千金)’은 그가 21년 만에 완성한 최초의 백과사전인 《백과전서》에 대한 헌사다. 수많은 정보와 지식은 물론 중세적 편견 타파, 종교 비판, 교회 및 전제정치에 대한 반대를 담고 있는 《백과전서》는 프랑스혁명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했다. 중국 진나라때 백과사전 '여씨춘추'를 편찬한 여불위가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고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고 호언했던 고사를 끌어와 디드로와 백과사전의 공로에 대한 찬사를 보낸 것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