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이 쓴 '용재총화'로 서울 구역별 분석
"15세기 후반 한양 북부는 풍류·남부는 연회 공간"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15세기 한양에 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과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한 김연수 씨는 학술지 '서울과 역사' 최신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조선시대 문인 성현(1439∼1504)이 당대 풍속을 정리한 '용재총화'를 바탕으로 15세기 후반 '한양도성 문화지도' 제작을 시도했다.

김씨는 성현이 한성부 안에 거주하면서 궁궐과 도성 물정을 용재총화에 상세히 기록했지만, 이 문헌이 야담이나 잡록(雜錄)쯤으로 인식돼 연구가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용재총화에 실린 글 중 125편을 뽑아 의례·의식, 종교, 세시·놀이·유람, 지리, 물산·음식, 관청·건물, 인물, 과거·등용 등으로 분류했다.

이어 한양도성 안쪽을 중부, 동부, 서부, 남부, 북부 5개 구역으로 나눠 특징을 논했다.

김씨는 중부를 도성 핵심이자 불교 행사 공간으로 설명했다.

세조(재위 1455∼1468)가 오늘날 탑골공원 자리에 원각사를 세웠는데, 이 사찰은 1504년 폐사될 때까지 한양도성 중앙 랜드마크였다는 것이다.

그는 북부는 풍류와 다문화 공간, 남부는 왕실의례와 사대부 연회 공간으로 각각 규정했다.

용재총화에는 도성 내 명승지로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 청학동 5곳이 등장하는데, 쌍계동과 청학동을 제외한 3곳이 북부에 있었다.

삼청동은 특히 봄에 피는 진달래꽃과 가을 단풍으로 유명했다.

또 북부에는 경복궁 외에도 도교 의례를 거행한 소격서, 불교 암자와 사원이 있어서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했다고 김씨는 분석했다.

이어 남부는 활쏘기 명소인 청학동, 나이 든 문신을 위해 베푸는 잔치인 기로연 장소 훈련원, 임금이 가끔 술과 음식을 하사하는 독서당이 있었다는 점에서 연회 공간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동부와 서부는 각각 휴식과 학문 공간, 외교와 교통 공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양 동부에 대해 "다른 구역보다 상대적으로 관청과 유람 장소가 적었다"며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과 유생에게 물품을 바치는 양현고, 교육기관인 동학(東學)이 있었고, 여유롭고 인적 왕래가 드물었다"고 설명했다.

한양 서부에 대해서는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모화관과 중국 사신이 머문 홍제원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외교의 장이었다고 평했다.

김씨는 "용재총화를 보면 한양은 불교 색채를 짙게 띤 도시, 한 번 달아오르면 쉬이 잠들지 않는 밤의 도시였다"며 "한양의 공간 구분을 더 명확히 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