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있는 곳이 문화 공간
대중 자연스럽게 몰려들어

온라인으로 오페라 공연 감상
극장·공연장들, 과감히 변해야
극장 개봉 대신 다음달 10일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영화 ‘사냥의 시간’.  /리틀빅픽쳐스 제공

극장 개봉 대신 다음달 10일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영화 ‘사냥의 시간’. /리틀빅픽쳐스 제공

‘극장의 시간’은 멈춰버린 걸까. 극장 개봉을 하지 않고 곧장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로 향하는 작품이 나왔다. 윤성현 감독의 신작 ‘사냥의 시간’이다.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영화가 아닌데도, 극장을 거치지 않고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이 작품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기대를 모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개봉이 연기되자 손해가 커질 것을 우려해 넷플릭스행을 선택했다. 영화계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해외 판매를 둘러싼 이중 계약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파장은 사라져 버린 극장의 시간이다.

극장이 최근 처음 마주한 숫자도 그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달 들어 영화관을 찾은 평일 하루 관객 수가 2만 명대까지 떨어졌다. 2004년 집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적다. 물론 일시적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극장의 시간을 뒤덮을 ‘넷플릭스의 시간’이 예상보다 빨리 찾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문화계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러나 예견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엔 극장처럼 공간이 있는 곳에 콘텐츠와 사람들이 모였다. 이젠 콘텐츠가 있는 곳이 곧 문화 공간이 된다. 그곳에 대중의 시선이 머무른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를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변화는 그 전에 조금씩 조짐을 보이다가 중요한 사건이나 이벤트 이후 급속히 진행되곤 한다. 구부러진 길의 끝 지점 같은.

극장뿐 아니라 공연장의 시간도 멈췄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차츰 시계가 움직이겠지만,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많은 사람이 온라인 공연장을 경험하게 됐다. 이전에도 네이버TV를 통해 공연 일부가 공개되긴 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많은 문화예술 단체가 무관중 공연 생중계를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까지 온라인으로 무료로 볼 수 있게 됐다. 국내외 유명 공연을 보고 싶어도 비용과 시간 부담 때문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공연 영상화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결국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공연장은 온라인 공연장과 경쟁을 벌이게 되지 않을까.

이런 변화들은 폭발적인 위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람들의 행동 패턴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학 강의도 온라인으로 듣기 시작했다. 교육 콘텐츠는 TED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처럼 유명 인사들의 강연 정도가 온라인으로 제공돼 왔다. 지금은 전 세계 대학에서 실시간 화상 강의를 하고 있다.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겪지만 ‘효율’이라는 온라인 강의의 장점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오프라인 강의로 돌아가더라도 온라인 시스템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물론 기존의 공간들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 토토처럼 어릴 적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꿈을 꿨던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영사기가 드르륵 돌아가는 소리에 토토의 가슴이 뛰었듯, 극장에서 소중한 사람과 영화를 보며 느낀 설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다. 공연장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감동도 크다. 공연장에 직접 가야만 화려한 뮤지컬 세계에 흠뻑 빠져들 수 있고, 첼로 선율을 타고 전해 오는 묵직한 감동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다시 극장과 공연장의 시계를 힘차게 돌리려면 이 기억에만 의존해선 안된다. 보다 색다른 경험과 새로운 추억을 선사할 수 있는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어린 토토의 가슴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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