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꼰대 문화에 지친 젊은이들, 펭수에 열광하다
지난해 11월 외교부에 간 펭수가 뉴스에 등장했다. 신원 확인 규정이 논란이 되자 앵커는 기자에게 “외교부 사람들은 저 펭귄 탈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이후 비난이 빗발쳤다. ‘눈치 챙겨’란 핀잔부터 ‘선을 넘지 마라’는 호통까지 뉴스엔 600여 건의 답글이 달렸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펭수의 시대》에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펭귄 탈 속 사람’이 아니라 ‘펭수 그 자체’라고 설명한다. 펭수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것 자체가 이분법적이고 편협한 사고로 대표되는 ‘꼰대스러움’의 상징이다. 따지지 말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열 살 펭귄’이라는 펭수의 소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열 살짜리 펭귄 하나에 많은 사람이 왜 이처럼 환호할까. 책은 펭수 열풍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짚어간다. 펭수는 방탄소년단과 송가인을 제치고 ‘2019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유튜브 개설 8개월 만에 구독자 100만 명을 넘었고 올 1월엔 200만 명을 돌파했다. 광고주들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펭수의 1년 광고 모델료가 최소 7억원은 될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고 있다.

저자는 펭귄의 태생적인 특징과 다른 캐릭터들과의 차별성을 분석한다. 펭수는 집단생활을 하는 펭귄의 무리를 벗어나 독립했다.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을 품은 채 불안정한 생활도 감수한다. 의지가 강하고 사교성도 좋다. 뽀로로, 라이언 등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귀여움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발언하고 행동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상사에겐 “잔소리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회사에서 신이 날 리 없잖아”라고 돌직구를 던진다. 고향 남극으로 떠난 그에게 연락한 제작진에 “휴일에 연락하면 지옥 간다”며 “일도 쉬어가면서 해야지”라고 충고한다.

저자는 “직장 내 거세지는 꼰대 논쟁과 사회 전반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 간의 갈등을 건드리고 나선 것이 펭수”라고 분석한다. 책은 시장을 평정한 펭수의 인기를 한국 사회가 당면한 쟁점과 세대론을 엮어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저자는 “펭수가 글로벌 스타가 되려면 환경이나 젠더, 윤리 이슈에 좀 더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펭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펭수의 인기에 투영된 가치관과 욕망을 이해하고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가기에 적합한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