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블라인드 캐스팅으로 연극 '언체인' 세 번째 연출
'연극계 박새로이?'…신유청 연출 "사람이 재산이죠"
"'언체인'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타인을 오해하고 속이는 가운데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에요.

이 과정에서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이 드러나죠. 즉 거짓말 속에서 본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
다음 달 7일 개막 예정인 2인극 '언체인'의 신유철(39) 연출은 최근 종로구 대학로 카페에서 한 인터뷰에서 작품에 관해 이같이 설명했다.

'언체인'은 잃어버린 딸 줄리를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마크'가 줄리의 실종에 관해 아는 '싱어'의 흐릿한 기억을 쫓아가며 조각난 기억을 맞춰 가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진실과 거짓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신 연출은 "극은 죄를 파헤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죄를 두고 극명하게 나뉘는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어느 곳에서 어떤 태도로 살고 있는가에 따라 죄에 대한 반응이 나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초연이 행위에 중심을 뒀다면 재연부터는 죄를 대하면서 양심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초점이다.

사람이 두 부류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죄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이 복합적으로 전복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삼연 무대는 초연이나 재연과 달리 배역에 따라 성별을 고려하지 않고 배우를 뽑는 젠더 블라인드 캐스팅이 특징이다.

이에 대해 신 연출은 "겉에 드러난 성(性)보다 내면의 성을 바라보자는 거다.

최근 사회적 흐름과 요구를 부정할 수 없겠지만 갖고 태어난 젠더를 뛰어넘어 내면을 보자는 취지로 젠더 블라인드를 시도하게 됐다"고 했다.

'연극계 박새로이?'…신유청 연출 "사람이 재산이죠"
'언체인' 연출이 세 번째인 그는 제작자가 경험하고 들려준 몇 줄의 시나리오를 듣고 뼈에 혈관, 근육, 피부를 붙이듯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제작해선지 삼연까지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작가가 원하는 것들이 담기다 보니 애착이 생긴 것 같아요.

"
요즘 공연계에서는 뮤지컬 '데미안' '라흐마니노프' '최후진술' '쓰릴미' '마마, 돈크라이'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등 2인극이 유행처럼 무대에 오르고 있다.

'언체인'도 대표적인 2인극이다.

신 연출은 "2인극, 1인극일수록 연출이 담을 여백이 많아지고 연극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최근 2인극이 많아진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모노드라마, 2인극은 배우들 사이에서 선호하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9년은 신유청의 해'라고 했을 정도로 요즘 공연계가 가장 주목하는 창작자다.

지난해 이창동 감독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와 '와이프'로 제56회 동아연극상에서 연출상을 받았다.

'그을린 사랑'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2019년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이름을 올렸다.

연출가로서 그만의 색깔은 무엇일까.

그는 오히려 "저만의 색깔이란 것을 싫어한다.

작품을 헤치지 않기 위해 저를 최대한 숨긴다"고 했다.

자신의 연출은 텍스트를 위에 두고 무대에 충실하게 올려놓는 보편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란다.

"연출이 결정권자고 최상위에 있다고 오해하는 동료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죠. 작업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숙제에요.

제 태도에 따라 방식이 결정되기 때문에 같이 보고 같이 생각하고 같이 결정하려고 하죠. 여기에 같이 흥미를 느끼는 배우들이 좋은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
'연극계 박새로이?'…신유청 연출 "사람이 재산이죠"
신 연출은 최근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박새로이가 하는 많은 어려운 결정에서 판단 기준은 결국 사람이다.

드라마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디자인을 하거나 글 쓰는 재능이 나에게는 없다.

사람이 재산인 것 같다"며 함께 작업하는 동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무참히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현실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삶이 빨리 회복되면 좋겠습니다.

간혹 연극이 삶에 큰 힘을 줄 때도 있고, 잊히지 않을 만큼 힘이 있는 작품도 있다고 생각해요.

조심히 오셔서 서로 힘이 됐으면 합니다.

"
'언체인'은 6월 21일까지 대학로 콘텐츠그라운드에서 공연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