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제보] "코로나 유증상자 있을지 모르는데…" 정수기 관리사의 애환
[이 기사는 경기도에 사는 박은주(가명)씨 등이 보내주신 제보를 토대로 연합뉴스가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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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각 가정을 방문하는 서비스 직종 종사자들이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감염 우려가 있는 환경이더라도 고객이 원하면 방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직종에 임대 정수기 관리사가 있다.

경기도 한 도시에서 정수기 관리 일을 하는 박은주(가명)씨는 5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확진자 가운데 신천지 교인이 많아 신천지 관련 교회나 교인 가정 방문이 꺼려지는 게 관리사들 마음이지만 우리로선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가 속한 정수기 임대업체 지국장과 관리사들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도 최근 이에 대한 우려섞인 이야기가 오갔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지국장이 코로나19 환자가 대거 발생한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정식명칭) 교회나 교인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묻자 관리사들은 난감해할 뿐이었다.

관리사들은 "오늘 교회 점검을 하러 가긴 하는데 신천지 쪽인지는 모르겠다.

교회 앞에 따로 표시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신천지 교인은 가족들도 모른다고 한다.

밝히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라는 반응을 내놨다.

[OK!제보] "코로나 유증상자 있을지 모르는데…" 정수기 관리사의 애환
박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회사가 정보를 확인하고 관리사에게 주의하라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더러 묻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방문 가정에 어떤 내력이 있는지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자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불안함을 안고 일하는데 대처가 안이해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박씨와 같은 지국에 소속된 관리사 김모씨도 "코로나19 사태로 가정 방문 건수가 평소 대비 70% 정도로 줄어들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정수기 관리를 요청하는 고객도 많다"며 "혹시라도 감염돼 아이들을 돌보지 못할까 걱정이 큰데 방문할 가정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에 대해 본사 관계자는 "자가격리 여부 등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보를 정부로부터 받아 정수기 관리사들과 공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라며 "가정 방문 전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정기점검 연기 의사를 고객들에게 묻는 것이 현재로선 업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밝혔다.

다른 정수기 업체 관리사들도 가정 방문 노동에서 안전 보호가 미흡하다고 말한다.

정수기 관리사가 결성한 유일한 노조인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웅진코웨이지부 왕일선 지부장은 "주 2회 관리사 20∼30명이 지국 사무실에 모여 실적 회의를 하던 것을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사서 중단하라고 정식으로 공지했지만 일부 지국장이 재량으로 참석을 강요하고 있다"며 "영업 실적 관리보다 관리사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서비스노조 강병천 조직실장은 "정수기 관리 목적으로 방문한 가정이 나중에 알고 보니 자가격리 중이었다거나 하는 사례가 파악되고 있다"며 "사측이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하기보다 관리사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정수기 관리사처럼 집 안까지 들어가진 않더라도 소비자와 대면 접촉하는 다른 업종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세가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대구·경북 지방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경북 구미시에서 하루 2천회 이상 배달한다는 퀵 업체 대표 A씨는 "거주 중인 동네에 확진자가 매일 4∼10명씩 나오는 상황이지만 배달 종사자의 안전은 별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확진자가 나온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아파트여도 문 앞까지 물건을 갖다주지 않으면 배달 앱 리뷰에 악성 댓글이 달려 죽지 못해 올라가는 실정"이라며 서비스 이용자의 배려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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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