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광스님이 그리고 쓴 해외순례 여정…"괴발개발 그림이 너무 쉽고 친근"
500편 그림일기에 담은 만행…'세계는 한송이 꽃이라네' 출간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만행(萬行)은 시베리아 바이칼과 인도, 중국, 일본을 거쳐 신비의 나라 티베트로 발길을 옮긴다.

'구법(求法)의 길' 실크로드, 러시아, 미국, 태국, 부탄 등에 이르기까지, 2013년부터 이어온 해외순례 여정이 500개 가까운 펜화와 일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진광스님이 낸 '세계는 한 송이 꽃이라네(조계종출판사)'는 다채롭다.

그림 공부라고는 해 본 적이 없다는 스님의 펜 끝에서 고승이 살아나고 불교 유적지가 그려진다.

모스크바역 레닌상 앞에서 몰락한 러시아식 사회주의 이상을 떠올리고, 이집트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당대 사람들의 희망과 열정을 생각한다.

정감이 넘치는 그림과 함께 실린 일기에는 그의 철학이 도드라진다.

진광스님은 1998년부터 안거(安居)가 끝나면 배낭을 메고 해외를 떠돌기 시작해 지금까지 다녀온 나라가 130개국이 넘는다.

이 같은 경험을 밑천 삼아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으로 있는 동안 해외 순례를 직접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지금까지 해외 순례에는 2천300여명 스님이 동참했다.

그는 스님들과 이곳저곳을 순례하면서 잠자리에 들기 전 그날 기억들을 촌평과 함께 그림으로 되짚었다고 한다.

세계 각지로 순례를 떠나는 동안 이렇게 남긴 그림일기는 노트 10여권 분량으로 불어났고, 전 세계 순례의 역사를 담은 책으로 태어났다.

500편 그림일기에 담은 만행…'세계는 한송이 꽃이라네' 출간
18일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만난 진광스님은 "초등학교 이후로 미술 시간에 50점 이상 받은 적 없는 문외한"이라며 "2007년 여행을 하는 동안 한국인 남녀커플이 그린 스케치를 봤는데 나도 그렇게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펜을 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순례를 다니면서 그렸던 것을 동행했던 비구니 스님들이 보시고는 책으로 엮었으면 좋겠다는 격려를 해주셨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책으로 내게 됐다"고 겸손해했다.

무엇보다 스님의 그림일기는 소박하다.

말뜻처럼 꾸밈이 없고, 수수하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이들의 손끝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그림들이다.

펜화가 김영택 씨는 책의 추천사를 통해 "모든 인물은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유치원 신입생의 그림, 딱 그 수준"이라 '혹평'하면서도 "'그림치'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유치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착각에 빠진다.

괴발개발 그린 그림이 너무나 쉽고 친근하게 보인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단순한 그림과 짤막한 글을 읽노라면 이철수 화백의 목판화에서 느꼈던 '촌철살인'이란 표현이 떠오른다"고 극찬했다.

순례 이야기가 가득한 책의 제목은 만공 큰스님의 '세계일화(世界一花)'에서 따왔다.

만공스님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무궁화 꽃잎에 붓으로 이 글을 썼는데 세상 모두가 꽃 한송이처럼 하나라는 뜻을 담고 있다.

500편 그림일기에 담은 만행…'세계는 한송이 꽃이라네' 출간
진광스님은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 자연, 유적 등 발걸음마다 조금씩 만발해서 온 세상이 크나큰 꽃과 같이 아름답고 풍요로웠으면 좋겠다 싶어 '세계일화'라고 책 이름을 짓게 됐다"며 "다음에 후속편을 낸다면 '염화미소(拈華微笑)'로 지어야겠다"며 껄껄 웃었다.

스님은 1993년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법장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원담 노스님을 3년간 시봉했고, 전국 선원에서 20여 안거를 한 수도승(修道僧)이었다.

2010년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뒤로 조계종 교육원에서 소임을 맡아 10년간 수도승(首都僧)으로 지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