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놓고 감정 없는 식물과 경쟁해야 하는 젊은이가 있다.

최고의 셰프가 되는 게 꿈인 20대 음식점 종업원 후지마루다.

혈기왕성한 남성인 그는 배달하러 간 대학 연구실에서 식물학을 연구하며 박사과정을 밟는 여성 모토무라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아름다운 눈에 학구열까지 모든 게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시작부터 이 사랑은 다소 비극적이다.

모토무라는 이성이라면 누구도 사귀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식물과 결혼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심지어 모토무라는 한창 멋 부릴 나이인데도 식물 기공이나 버섯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닐 정도로 이성에 잘 보이는 데 관심이 없다.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해서 지구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어요.

"
그러면서 모토무라는 말한다.

"저는 식물을 선택했어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누구하고든 만나서 사귀는 일은 할 수 없고, 안 할 거예요.

"
이런, 식물과 사랑을 다퉈야 한다니…. 후지마루는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두 차례 고백에도 항상 저런 식의 반응이 돌아왔지만, '사랑 없는 세계'를 살려는 모토무라를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 일본 문학을 이끌 중견작가 중 하나인 미우라 시온의 신작 장편소설 '사랑 없는 세계'(은행나무 펴냄)를 이루는 이야기의 뼈대다.

식물과 벌이는 사랑 쟁탈전…미우라 장편소설 '사랑 없는 세계'
제목 '사랑 없는 세계'는 모토무라가 말했듯 식물의 세계를 뜻한다.

그리고 후지마루가 사랑하는 여자는 하필 이런 세계에 속하고 싶어 한다.

생존 전문가 베어 그릴스는 다큐멘터리 '인간 vs 자연'에서 자연과 싸워 생존하지만, 후지마루는 식물과 싸워 사랑을 쟁취해야 한다.

'인간 vs 식물'이다.

이 러브 스토리는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후지마루는 끊임없이 모토무라에게 '사랑의 힘'을 설명하고 설득한다.

식물에 대해 알고 싶은 모토무라의 마음이나, 모토무라를 더 알고 싶은 자신의 마음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한다.

이런 마음들은 우리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를 살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후지마루는 말한다.

이런 연결성을 결국 모토무라도 인정한다.

'빛'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다.

"식물은 광합성을 하며 살고, 동물은 그 식물을 먹고 살고, 그 동물을 먹고 사는 동물도 있고…. 결국, 지구상 생물은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구나 하고요.

" 결국 지구상 모두를 연결해주는 '빛'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면서 사랑이 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꼼꼼하고 정확한 식물 연구 묘사로 지난해 일본식물학회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일본 서점대상 본상 후보작이기도 하다.

서혜영이 옮겼다.

미우라는 2006년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나오키상을, 2012년 '배를 엮다'로 서점대상을 받으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이 두 상을 모두 받은 첫 번째 작가다.

오다사쿠노스케상, 시마세연애문학상 등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