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태 교수의 신간 '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

"지금까지 발견된 선사시대, 특히 신석기시대까지의 신상(神像)은 90% 이상이 여신(女神)이야. 동서양 어느 곳의 신화를 봐도 사람에게 아이를 주는 이는 여신으로 나와."
"여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대지를 적시는 비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어. 이 비가 낮은 곳에 모이면 개울이 되고 강이 되어 흐르지. 강에 사는 많은 생명이 여신의 눈물을 먹고 마시며 자라는 거야."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왜 남신이 아닌 여신을 먼저 형상화하고 숭배했는지 저자는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고고학적 발굴을 보면 흥미롭게도 엄마들이 여신의 그림자로 여겨진 흔적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열심히 아이에게 젖 먹이는 엄마의 모습에서 여신이 하늘의 젖과 눈물로 사람을 먹이는 모습을 상상했는지도 몰라. 여신은 사람을 처음으로 낳아 생명을 준 거야."
고대 사람들은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고대 사람들은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고분벽화와 암각화 연구의 권위자인 전호태 교수가 우리 고대사상의 탄생을 돌아보는 '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을 내놨다.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수만 년 동안 축적된 고대 한민족의 생각과 신앙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담아낸 신간이다.

대학 때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지금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전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한다.

이번 신간은 중요한 유물, 유적, 개념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동서양 신화와 미술, 종교를 넘나들며 우리의 고대사상을 입체적으로 설명한다.

역사기행 길잡이인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눈높이로 동일한 유물을 바라보며 오손도손 대화하는 형식이어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더불어 유물과 사상이 생겨날 당시의 상황을 고대인의 시각으로 서술해 생동감 있는 1인칭 시점으로 살펴보게 한다.

앞부분은 구석기-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로 이어지는 선사시대 역사를 되짚는다.

토기 제작과 농경으로 대표되는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사고의 도약기였음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지만 있다고 믿는 존재, 즉 '신'을 인간이 발견해낸 것은 신석기시대였다.

이들 신석기인은 신전과 신상을 만들어 숭배의 제의를 수행했다.

그리고 세상과 삶의 근원을 탐구해 신화를 만들었다.

죽은 뒤의 '내세' 개념을 발명해 장례를 치르며 신에게 죽은 자의 내세를 지켜달라 기원한 것도 이때였다.

책 후반부는 후기 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를 다룬다.

여기서는 현대의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와 사상을 본격적으로 만난다.

청동기시대 이후 부족국가가 형성됨에 따라 현실의 권력관계가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창세신화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영웅신화의 시기가 열렸다.

고구려, 백제, 신라, 부여, 가야는 각자의 지배층이 지니는 우월함과 신성성을 부각하기 위해 시조의 영웅신화와 건국신화를 백성들에게 전파했다.

이와 함께 책은 한반도에 전파된 불교, 도교, 유교 사상의 주요한 가르침과 그 유입 배경과 과정, 그에 따른 사회상 변화를 살핀다.

특히 종교의 유입 과정과 그 흐름을 통해 삼국시대 당시 동아시아 외교의 단면까지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

고대 사람들은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고대 사람들은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고대인들이 자신의 삶터와 죽음터에 그림을 남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전공분야인 암각화와 고분벽화를 통해 더 깊은 이해를 돕는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 시작된 벽화미술 흐름은 신석기~청동기시대 암각화로 이어진다.

벽화는 역사시대로 넘어가면서 무덤 안으로 자리가 옮겨졌고, 그 시대 사람들의 내세관을 형성한 불교, 도교, 신선신앙 등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형태로 곳곳에 남게 된다.

다음은 책 말미에서 고대의 사상과 종교의 본질을 상상하며 남긴 말-.
"신념은 개인적이지만 사상은 집단적이야. 이념은 사회라는 범주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게 특징이고, 신앙도 본래는 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제도화·사회화 과정을 거치면 종교가 돼. 신념이 신앙이 되고, 사상이 종교가 된 거지. 이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이야."
창비. 508쪽. 2만2천원.
고대 사람들은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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