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두 켤레
지금 서울 인사동에 있는 종로타워 자리에 화신백화점(사진)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생긴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아버지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 중학교 교복을 사 입혔다. 내 몸보다 반 몸은 더 큰 검정 교복 속의 내 모습을 아버지는 세상 흐뭇한 미소로 바라봤다. 촌놈인 나는 처음 와 보는 백화점의 크기와 에스컬레이터, 궁궐 같은 조명, 활기차고 세련된 사람들에게 압도돼 얼마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설날에 큰형과 이야기해 보니 아버지는 다섯 형제의 교복을 모두 화신백화점에서 사주셨고 그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셨으며, 한결같이 옷들은 넉넉하게 여유 있었음을 알았다.

최근 명동에 있는 백화점을 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백화점 나들이였다. 삶의 큰 변화 두 개를 마주했는데, 위기일 수 있는 변화였다. 평소 좋아하는 선배에게는 알려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메일을 보냈는데 점심을 먹자는 답이 왔고 공교롭게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선배가 사주는 맛있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러 가는 길에 형이 말했다. “너에게 선물을 하나 사주고 싶어.” 느닷없는 제의에 마음만 받겠다고 했지만 형은 택시를 잡더니 명동의 백화점으로 가자고 했다.

오랜만에 찾은 백화점은 40년 전 6층짜리 화신보다 몇 배는 큰 규모였지만, 그때처럼 내 눈에 더 이상 판타지 공간은 아니었고, 형은 나를 데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신발 매장으로 갔다. 한참 전, 어디서 그렇게 예쁜 신발을 사냐고 내가 형에게 물었던 그 말을 형은 기억하고 있었다. 신발들은 하나 같이 멋졌고 이것을 사자니 저것에 자꾸 눈에 갈 정도였다. 그중 하나를 골라 일어서려는데 형이 또 말했다. “너는 하나를 더 고를 선택권이 있어.”

나는 “또?”라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고, 이 신발 브랜드는 ‘원플러스원’을 해주는 곳인가 생각하며 이번에는 형이 골라 준 다른 스타일의 신발로 빠르게 결정했다. 그것이 원플러스원이 아니었음은 백화점을 나서면서 알았다. “네가 맞이한 두 개의 변화,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처럼, 두 개 모두 각각의 새 신발을 신고 기운차게 시작해봐.”

신발 두 켤레
그 순간이었을까. 무감했던 명동의 백화점이 열세 살 화신으로 변하면서 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저 밑에서 훅훅 올라온 것은? 가난한 시절 아버지는 오래 입으라고 옷의 치수를 ‘여유’ 있게 사줬다. 나중에야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며 짠해진다. 마음이 세심한 선배는 용기와 격려의 치수를 ‘여유’ 있게 선물하고, 나는 두고두고 신발을 신으며 생각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때,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줘야 하는지에 대해. 어른의 우아함이라고 불리는 한 뼘 넓이의 혜량(惠諒)에 대해.

노매드 대표·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