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동생이 안락사를 택했습니다

▲ 나는 괜찮은데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한다 = 니시다 마사키 지음, 김지윤 옮김.
24년차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정상'과 '이상'의 경계, 그리고 '병식(病識)'에 관해 이야기한다.

병식이란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 가지는 올바른 인식'으로 정의된다.

흔히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미쳤다고 할 수 없다'고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조현병 환자 대부분은 자신의 정신질환을 강하게 부인하고 치료 권유에 화를 낸다.

그러나 저자가 치료한 '쇼코 어머니'처럼 주위의 강권으로 병원에 왔지만 자신의 정신은 멀쩡하다고 믿으면서도 '아무래도 내가 이상한 것 같다'는 정도의 막연한 병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 주인공 내시에서 보듯이 망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오가는 사람은 현실에 가까워졌을 때 '역시 나는 아프구나'하고 자신의 병을 깨닫고 통찰하기도 한다.

쇼코 어머니 이외에도 책에는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망상성 우울증 환자, 기분이 고조된 상태에서 파산과 이혼 등을 겪는 조울증 환자, 남에게 상처를 주고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 사람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치매 환자, 평소 분위기 파악을 못 한다는 소리를 듣는 아스퍼거장애 환자, 의사에게 버림받을 것을 불안해하는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 등 갖가지 유형 환자가 등장한다.

저자의 결론은 분명히 병식 장애를 동반하는 정신질환자들이 있으며 그들에게 개입하는 일을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행성B. 236쪽. 1만5천원.
[신간] 나는 괜찮은데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한다
▲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천자오루 지음, 강영희 옮김.
대만판 '도가니'라 불리는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언론인 출신 저자가 장애인과 그 가족, 돌봄 노동자와 사회복지사, 인권단체 활동가, 특수학교 교사, 장애인을 위한 성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등을 전방위로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오랜 세월 봉인된 장애인의 성과 사랑의 실태를 드러내 보인다.

다양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꺼내는 용기와 짜릿한 교감의 순간, 만남과 이별의 과정에서 겪은 좌절과 슬픔, 신체의 손상에서 오는 한계와 도전이 숨김없이 그려져 있다.

에두르지 않고 분명하게 묻는 저자 앞에서 장애인들은 어둠 속에 방치해두었던 마음속의 말을 다 꺼내놓는다.

휠체어를 타지만 자기 몸에 맞게 엄마 역할을 익혀가는 샤오위, 대만 최초로 성 자원봉사 단체를 설립한 지체장애인이자 성소수자인 황즈젠, 성 자원봉사를 이용한 뒤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 새 인생을 시작한 스티븐 등이 만 명의 장애인에게 만 가지 빛깔의 사랑이 숨 쉬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타인과 신체 접촉을 통해 더 깊고 장기적인 관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다.

성은 양다리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아를 탐색하고 욕망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한다.

사계절. 324쪽. 1만7천원.
[신간] 나는 괜찮은데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한다
▲ 동생이 안락사를 택했습니다 = 마르셀 랑어데이크 지음, 유동익 옮김.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한 나라 네덜란드의 언론인이 동생의 안락사를 지켜보며 쓴 에세이다.

여기에서 '안락사'는 우리나라 법이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연명치료 중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료진 도움으로 인위적으로 생명을 끊는 '조력 자살'을 의미한다.

41세에 안락사를 택한 마르크는 잘 생겼고 아들 둘,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고급차와 사우나까지 갖춘 고급 주택에서 겉보기에는 남부러운 것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동생은 육체의 불치병과 다름없이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책의 각 장은 그런 동생의 고통과 아픔을 기술한 일기로 시작해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형의 고통과 아픔을 이어서 이야기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동생은 더는 삶을 이어갈 방법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고 관계 법령에 따라 두 명의 의사가 이를 승인해 1년 6개월의 기다림 끝에 안락사가 시행됐다.

동생의 죽음은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1981년부터 '조력자살'이 허용된 네덜란드에서도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저자는 "어쨌든 살아야지"라거나 "마음의 병이 있었다면 치료했어야지"와 같은 지적과 비난에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동생은 치료될 수 없었다.

그에게 안락사가 승인되었던 이유다.

그가 죽은 이유다"라고 썼다.

꾸리에. 236페이지. 1만5천800원.
[신간] 나는 괜찮은데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