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블랭크' 30일 금호아트홀서 공연

클래식 분야의 현대음악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찬밥 신세다.

현대음악은 가끔 공연되지만, 음악회의 오프닝 곡 정도로만 연주되는 게 일반적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적으로도 이런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다.

헬무트 라헨만이나 베아트 푸러 음악이 모차르트나 베토벤 곡보다 자주 연주되는 곳은 아마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작곡만 해서 먹고살 수 있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현대음악 작곡가인 마티아스 핀처도 부업을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휘도 열심히 한다.

오선지를 꺼내 곡을 본격적으로 쓸 수 있는 건 여름 방학 때뿐이다.

대가들조차 '먹고 살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서 핀처에게 작곡을 배운 최재혁(26)도 현대음악 작곡가다.

아직 20대지만 벌써 괄목할 만한 행보를 보인다.

2017년 제72회 제네바 국제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연소 1위에 올랐다.

그가 작곡한 바이올린곡 '셀프인 마인드 Ⅰ'(Self in mind Ⅰ)은 2018년 메뉴인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주니어 결승 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휘 경험도 풍부해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 런던 심포니를 지휘했다.

스승 핀처는 "다음 세대에 진짜 작곡가로 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그를 평하기도 했다.

마술사 꿈꾼 작곡가 최재혁…"음악이라는 마술에 빠졌죠"
이처럼 이른바 '잘나가는' 작곡가지만 현대음악 분야에서 '롱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현대 음악 작곡가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0.000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청춘에서 뿜어져 나오는 창의성의 연료는 대개 불안인 경우가 많은데, 그 역시도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 꿈은 마술사였어요.

환상을 현실로 만든다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자라서는 음악을 하게 됐는데, 환상을 현실화한다는 점에서 음악은 마술과도 닮은 것 같아요.

잡히지 않는 것을 악보에 적는다는 게 너무 아름다워요.

제가 작곡을 하는 건 (기존 예술에 대한) 해체에도 관심이 있어서지만 본질적으로 아름다워서예요.

결과물도 아름답지만, 쓰는 행위 자체도 아름다워요.

어쩌면 과정이 더 예술적이라고 생각해요.

"
그는 중3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줄리아드 음대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핀처뿐 아니라 진은숙, 위트만 브라운, 사무엘 아들러 등 대가들을 사사했다.

한창 공부하던 2015년, 줄리아드 동창생들과 그는 실내악단을 만들었다.

현대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공연 기회를 좀 더 많이 가져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악단 이름은 '앙상블블랭크'.
보수적인 콘서트홀보다는 다양한 실험을 많이 하는 미술관에서 먼저 연주를 시작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장욱진미술관에서 여러 콘서트를 했고, 일신홀, 부띠끄모나코 강남 등지를 거쳐 지난해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콘서트를 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현대적인 바흐나 베토벤의 곡들과 현대음악을 병행해서 연주했다.

마술사 꿈꾼 작곡가 최재혁…"음악이라는 마술에 빠졌죠"
5년간 미술관 등지에서 관객을 만난 앙상블블랭크가 이제 음악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오는 30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베토벤이 상상한 미래'를 주제로 연주회를 연다.

1820년대 베토벤 음악, 1910년대 신빈악파의 음악,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베토벤 음악이 당대와 후대 작곡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해보는 자리다.

"'너는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베토벤 같은 작곡가'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렇게 존경하는 작곡가를 기리는 연주회에 초대돼 정말 기뻤죠. 베토벤은 당대의 현대 작곡가라 할 수 있죠.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작품을 추구했어요.

'대푸가'는 5년도 10년도 아닌 무려 100년이나 앞서간 곡이었죠. 새로운 것을 발굴하고, 찾으려는 그의 열망은 아직도 현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어요.

"
그는 베토벤이 남긴 악보도 가끔 들춰본다고 한다.

"모차르트 음악은 군더더기가 없어요.

완벽하죠. 베토벤 음악은 모차르트 음악처럼 완벽하진 않아요.

지적하려고 마음먹으면 지적할 부분이 있어요.

어쩌면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설명하긴 어렵지만, 베토벤 음악은 불완전함 속에 어떤 완전함이 있는 것 같아요.

"
마술사 꿈꾼 작곡가 최재혁…"음악이라는 마술에 빠졌죠"
그는 음악 작곡이 매우 철학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논리적인 생각도 다듬어야 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세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작곡가가 되기 위해선 호기심과 열정, 끈기 같은 게 필요해요.

이론을 몰라도 상상만으로도 음악 예술은 할 수 있어요.

작곡은 손으로 하죠. 오선지에 음표가 적히는 순간 소리가 담깁니다.

잡을 수 없는 것들을, 잡는다는 건, 너무 멋진 것 같아요.

더구나 그 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름다움이라면…."
마술사 꿈꾼 작곡가 최재혁…"음악이라는 마술에 빠졌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