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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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폭력 가해자였다."

한 명문대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백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내 최고 명문대에 재학 중인 A 씨가 동문 커뮤니티에 작성한 "초등학교 때부터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였다"며 "학교폭력은 공부 스트레스를 푸는 최고의 방법이었다"는 글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충격을 안겼다.

A 씨는 "반에 좀 어눌한 친구가 있으면 반 아이들과 같이 놀리고, '쟤 냄새나', '쟤랑 놀면 안돼'라고 말을 하거나 의자에 쓰레기를 놓고, 방석을 몰래 밟는 것이 시작이었다"며 "참 즐거웠다"는 글을 게재했다.

A 씨는 또 "SNS로 '**가 **이라 생각하면 공유', '누구 ** 소개받을 사람' 등의 유치한 말로 친구를 괴롭혔다"며 "결국 그 게시물을 담임 선생님이 보개됐고, 나와 친구들은 훈계를 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이 발각되도 크게 혼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A 씨는 "고등학교 때 폭력의 정도는 더 심해졌는데, 이 때는 부모님 욕도 유행했던 때라 그냥 서슴없이 욕을 하며 몰래 괴롭혔다"며 "자폐가 있는 아이였는데, 그 애가 나에게 들은 욕을 그대로 한 날, '감히 네가 나에게?' 괘심한 생각에 때렸다. 물론 겉으로 안 보이게 팔이나 명치, 머리 등을 때렸다"고 지능적으로 학교 폭력을 자행했음을 밝혔다.

A 씨도 학교폭력이 나쁜 짓인 것을 알고 "소위 전교권에서 노는 학생이었는데 '이 일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지면 어떡하나'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학교폭력 설문조사 후 일종의 보험으로 괴롭히던 아이에게 갑자기 잘해주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피해 학생의 고발로 경찰이 학교에 찾아오기도 했지만 A 씨는 "친구들끼리 잘 지내야지, 그러면 되겠냐"는 말을 듣는 것 외에 어떠한 조치도 받지 않았다. A 씨는 "경찰관이 있던 상담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며 "살았다는 안도감에 취했다"고 당시 느낀 심정을 전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A 씨의 학교폭력은 이어졌다. 피해 학생과 반이 달라졌지만, "심심할 때마다 찾아가서 필통을 빼앗거나 때리고 도망가는 등 그 애를 먹있감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반 아이들 모두가 A 씨의 학교 폭력을 알았지만, 선생님들도 공부잘하는 학생이었던 A 씨를 처벌하지 않았다.

A 씨는 "학년부장 선생님이 불러 '너 학생부에 빨간 줄 그이면 대학을 가지 못한다'고 입발린 말을 했고, 선생님은 '그 친구(피해 학생) 반경 10m 안에도 가지 말라'는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다"며 "나는 알겠다고 하고 교실 밖으로 나와 안도감에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냥 공부만 해서 좋은대학이나 가야지'하는 생각 뿐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네티즌들은 "충격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쁜 짓을 해도 공부만 잘하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건가", "이런 쓰레기같은 행동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못하고 손가락을 놀리냐" 등 A 씨가 글을 쓴 행위 자체를 비난하는가 하면 "저런 애들이 좋은 학교 나오고, 공부 잘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인생에 영향력을 끼치는 직업을 갖게 되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학교와 경찰의 소극적인 학교폭력 대처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1일부터 30일까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재학생 13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9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폭력 피해 학생들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 인물로 선생님(30.9%)이나 친구·선배·후배(17.0%), 경찰(1.9%) 보다 가족(33%)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가해학생들이 학교 폭력을 저지른 이유로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가 33.2%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 가운데 괴롭힘의 방식은 언어폭력(39%), 집단따돌림(19.5%) 뿐 아니라 신체 폭행(7.7%), 성추행·성폭행(5.7%)까지 강력범죄의 양상을 띄고 있음에도 교육부는 "가벼운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교육적 해결을 유도한다"면서 올해부터 1회에 한해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유보할 수 있도록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맘카페'를 중심으로 "우리 아이가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면 학교에 알리기 전 경찰에 먼저 신고하고, 고소부터 하라"는 대응 메뉴얼까지 번지고 있다. 이들은 "학교는 사건 자체를 은폐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며 학교의 학교폭력 대응 방식 자체에 불신을 보이는 경향이었다.

실제로 학교폭력이 신고된 후 열리게 되는 학생폭력위원회(이하 학폭위)는 사건에 대한 조사 권한이 없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제대로 내리기 힘들다. 학폭위 과정에서 가해 학생 측이 피해 학생 측에 2차 가해를 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소하는 경우도 발생하기도 한다.

설사 학폭위를 통해 학교폭력 피해가 입증됐다고 하더라도 가해학생은 학교봉사 정도의 처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학폭위원 절반 이상이 학교 운영위원회 학부모들이고, 가해자의 부모가 참여하고 있는 경우도 빈번하기 때문.

최근엔 이런 흐름을 반영해 '이혼 전문 변호사'처럼 학교폭력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소송을 준비하기 전에 해둬야 하는 일이 많다"며 "이런 것들을 짚어 주면 더욱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고 전문성을 강조했다.

피해 학부모들은 "학교폭력 예방 교육도 중요하지만 엄정한 처벌, 폭력 성향 학생에 대한 지속적인 상담과 관리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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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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