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갤러리서 3월 1일까지 개인전
"속도 줄이니 풍경 보여"…김선두 느림의 미학
시야가 막힌 급하게 굽은 도로나 교차로에 종종 동그란 반사경이 있다.

빠르게 차를 몰다가도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게 되는 순간이다.

앞만 보고 달리던 운전자는 비로소 주변 상황을 살피고 주위 풍경도 눈에 넣을 수 있다.

한국화가 김선두(62)는 '느린 풍경' 연작에 반사경을 넣었다.

그림 중앙 하단에 자리 잡은 반사경에는 초록 들판 사이로 난 한적한 2차선 도로와 전봇대,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반사경 위쪽에 'SLOW'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속도를 줄이면 풍경이 보인다"는 작가의 깨달음을 담은 구성이다.

옅은 농담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반사경 내부와 달리 바깥쪽 배경은 추상적인 이미지로 작가 감정을 표현해 대비를 이룬다.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본관에서 22일 개막한 개인전 '김선두'에서 작가는 '느린 풍경'을 비롯해 느림의 미학을 느낄 만한 작품 19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어느 날 고가도로를 달리다가 '천천히'(SLOW) 표지판과 반사경을 보고 속도를 줄였다.

그제야 주위 풍경이 보였다.

그때 든 생각을 작품에 담았다.

그는 "젊은 시절 유명 화가가 되겠다고 바쁘게 속도를 내며 살다 보니 나도 주위 사람들도 피폐해졌다"라며 "내 삶의 속도도 줄이면 더 인간적이고 여유 있는 삶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에게로 U턴하다'에는 빨간불이 들어온 신호등과 유턴 표지판을 그렸다.

직진만 하던 삶을 돌아보고 잃어버린 나에게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별을 보여 드립니다 - 호박'은 시든 호박 줄기와 버려진 쓰레기의 배경에 별이 촘촘히 빛난다.

삶의 본질을 상징하는 별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욕망과 잡념을 버려야 보인다는 이치를 표현했다.

60대에 접어든 작가는 이처럼 원숙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본다.

작가의 작업방식에서도 느림의 미학을 엿본다.

김선두는 바탕 작업 없이 색을 중첩해 우려내는 장지화로 일본이나 중국 채색화와 구별된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장지 위에 분채를 수십차례 반복해 쌓으며 깊은 색을 끌어낸다.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실험으로 한국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수묵화 본질은 재료가 아니라 그리는 기법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유화로 수묵 깊이를 표현한 작품 2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번 전시로 현대회화로서 한국화가 가능한지 보고자 했다"며 "젊을 때는 빨리 그리는 것이 필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작품에 맞는 붓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인 작가는 김훈 '남한산성' 표지와 임권택 감독 영화 '취화선'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장승업 그림 대역을 맡았다.

지난해에는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받았다.

학고재에서는 네 번째 개인전이다.

전시는 3월 1일까지.
"속도 줄이니 풍경 보여"…김선두 느림의 미학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