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누추한 극장에서 어린시절 환상과 만나다
음식은 입으로 먹지만 뇌가 저장한다. 어떤 음식을 보면 떠오르는 기억의 대상은 어머니일 수도 있고 첫사랑일 수도 있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공간은 물리적으로 물질을 담는 그릇이지만 인간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는 기억의 창고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극장은 환상이었다. 읍내에 하나뿐인 극장에서 ‘로보트 태권브이’를 한다고 했을 때, 가난한 어머니를 울며불며 졸라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그 간절함만큼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환상은 풍선처럼 커져갔다. 성적 호기심이 마그마처럼 부글대던 중학교 때는, 등굣길 벽에 붙어 있던 여배우의 반라 사진 포스터를 보면서 극장은 판타지에서 에로틱으로 버전을 바꿔갔고 고등학교 때의 동시 상영극장은 금지된 사과를 먹는 듯 가슴 쿵쾅거리던 일탈의 장소이기도 했다.

언제든 극장을 갈 수 있는 어른이 되자 극장은 그냥 극장이 되었다. 그러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뭄바이의 어느 극장에 들어갔을 때, 나는 다시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한 매력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주 부자이거나 아주 가난하거나 둘 중 하나만 있다는 나라 인도에서 극장은 예외였다. 불이 꺼지고 필름이 돌아가는 순간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인도 관람객들은 어느 곳에서 똑같이 웃었고 동시에 한숨을 쉬었으며 일제히 울었는데 그 오버스러움이 아침 방송 주부 방청객보다 더 넘쳐나서 나는 대사도 못 알아듣는 영화보다 옆 사람들 표정 변화를 보는 게 재미있었다. 단순한 무언가에 초집중하는 사람들 속에서 복잡한 뇌를 리셋하는 느낌 때문에 나는 여행 틈틈이 인도의 극장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더 나이가 들어 사는 것도 분주해지고 놀거리도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극장을 가는 횟수는 줄었지만, 어떤 영화가 좋다고 하면 강박처럼 또 가야 하는 것이 극장이어서 두어 달에 한 번은 극장을 가는 것 같다. 극장은 더없이 안락해지고 대형화됐지만 거기까지다. 오히려 어떨 때는 예민함으로 고슴도치가 되고는 하는데 원흉은 팝콘이다. 나이가 들면 듣고 싶은 소리는 인간의 청력으로 들리고 듣기 싫은 소리는 ‘댕댕이’ 청력으로 들리는 걸까. 왜 옆 사람의 팝콘 먹는 소리가 대포 소리처럼 들리는지 모를 일이다.

인도의 누추한 극장에서 어린시절 환상과 만나다
전철이나 버스에 음료수도 못 가지고 타게 하는 사람들이 왜 조용히 영화를 보려는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에 공론화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 것일까. 저마다 팝콘 박스를 감싸 안고 극장을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자면, 오히려 저 냄새와 ‘우걱우걱’ ‘꼴딱꼴딱’ 소리를 감당하느니 지린내나는 옛날 극장에서 인도 사람들처럼 영화를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윤용인 노매드 대표·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