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롭슨 '지능의 함정' 번역 출간

두 명의 남자가 혼령과 인간을 매개하는 '영매'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A는 그것은 단지 속임수일 뿐이며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B는 영매의 존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반박한다.

의대 출신으로 '셜록 홈스'라는 인물을 창조해낸 작가 코넌 도일과 학교 교육은 12살까지밖에 받지 못했고 묶인 줄을 풀고 나오는 묘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은 헝가리 출신 곡예사 해리 후디니가 그 두 사람이다.

대부분 A가 도일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영국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롭슨이 쓴 '지능의 함정'(김영사)은 이처럼 지능이 높고 학력이 우수한 '똑똑한' 사람들이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는 일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실증적 연구들을 검토해 그 이유를 규명하고 대책을 강구하려 한다.

애플 설립자 스티브 잡스는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엉터리 치유법으로 암을 이기려다가 죽음을 재촉했다.

온라인 데이트 사기에 본의 아니게 마약밀매 조직 운반책 역할을 하다 체포된 폴 프램튼은 새로운 암흑물질 이론 등에서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명석한 물리학자였다.

DNA 대량복제를 가능케 한 기술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캐리 멀리스는 외계인과 별자리를 믿을 뿐만 아니라 인간은 '에테르'라는 물질을 통해 '아스트랄계'라는 천체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들과 같은 '헛똑똑이'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본다.

저자는 수많은 심리학과 신경과학 연구 결과를 인용해 합리성과 지능의 상관관계는 절대 완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오류에 빠지기 쉬운 것은 자신의 지능을 편향과 합리화에 동원하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세계관에 갇힌 사람은 결론이 애초에 자기가 정한 목적과 맞을 경우에만 자기방어적으로 두뇌를 가동하기 때문에 타인의 허점은 발견하면서 자기 논리의 편견과 오류는 외면하는 성향을 띠게 된다.

또 객관적 근거를 묘한 방식으로 재배치하거나 무시해 자신의 편향을 확증하는 비합리적 결론을 내리고 만다.

그리고 자기 전문성을 확신한 나머지 타인의 관점을 무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폐쇄적 사고방식으로 생각과 판단이 한 방향으로만 굳어져 융통성이 없어지는 현상을 불러온다.

도일의 경우 요정을 믿는 것을 합리화하는 데 자신의 지적 능력을 최대한 동원했다.

요정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로 전자기 이론을 들먹이는가 하면 어린 학생들이 장난삼아 만든 요정 사진 속 핀 자국이 요정의 배꼽이라고 주장하면서 "요정들이 자궁에서 탯줄을 통해 어머니와 연결된 증거"라고 주장하는 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맹신한 데 따른 오류는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연방수사국은 192명이 죽고 2천여명이 다친 2004년 마드리드 폭탄테러를 조사하면서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았다가 굴욕적인 사과를 해야 했고 케네디 행정부 최고의 두뇌들이 기획한 쿠바 피그스만 침공은 어이없는 실패로 끝났다.

저자는 근대 합리론의 비조인 데카르트가 1637년 '방법서설'을 통해 '지능의 함정'을 잘 설명했다고 지적한다.

"머리가 좋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걸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옳은 길로만 간다면 너무 서두르다가 길을 잃는 사람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다.

"
'지능의 배신'에 대처하는 길을 제시하는 새로운 과학도 등장했다.

저자가 힘주어 소개하는 '증거 기반 지혜(evidence-based wisdom)'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를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현실적 능력인 지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책에서는 여러 전문적인 개념과 기법들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핵심은 사고 능력은 지능과 달리 훈련이 가능해서 지능지수(IQ)에 상관없이 누구든 좀 더 지혜롭게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문제를 정의하고 다른 관점을 찾아보고 사건이 불러올 다른 결과를 상상하고 잘못된 주장을 골라내는 연습을 하면 지혜롭게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과 지적 겸손 같은 자질이 행복을 예견하는 지표로서 지능보다 우월하다는 점은 천재가 아닌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고무적이라고 여길 만하다.

이창신 옮김. 432쪽. 1만7천800원.
세상에 많이 배운 '헛똑똑이'가 이렇게 많은 이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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