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코스-서울시향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리뷰

마치 평생 보석을 세공해온 명장의 솜씨를 보는 듯했다.

맑고 투명하게 빛나는 바이올린 톤, 음 하나하나를 쌓아가는 세심한 손길,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더해져 완성된 놀라운 음악의 건축물. 아마 작곡가 베토벤도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연주하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다면 이 작품이 이토록 찬란한 빛을 뿜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다.

지난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과 함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카바코스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명성에 걸맞은 뛰어난 연주로 감탄을 자아냈다.

음 하나하나를 다듬고 다듬어 크리스털 같은 빛을 뿜어내는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명인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카바코스의 베토벤…크리스털 같은 바이올린 음의 순수함
사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곡이다.

인토네이션이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금방 티가 날 뿐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감출 수도 없고 자신을 과시할만한 화려한 부분도 없다.

한 마디로 숨을 곳이 없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두려운 음악이다.

게다가 바이올리니스트와 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마치 실내악을 연주하듯 신경을 곤두세우며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러나 카바코스에게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인 듯하다.

그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협주곡을 들어보면 평생을 바이올린 음을 다듬고 다듬어낸 그의 '음악수행'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카바코스는 마치 가장 이상적인 바이올린 음을 찾아 떠나는 수도자처럼 보였다.

바이올린 음의 가장 순수한 부분만을 표현하고자 모든 군더더기를 걷어낸 그의 연주 덕분에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크리스털 궁전같이 빛나는 예술품으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 카바코스가 직접 편곡한 카덴차(협주곡에서 독주자가 자유롭게 기교를 과시하는 부분)는 놀라웠다.

베토벤이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악보를 바탕으로 하는 이 카덴차에서 바이올린과 팀파니는 마치 연주 대결을 벌이듯 긴장감 넘치는 2중주를 선보였다.

카바코스의 베토벤…크리스털 같은 바이올린 음의 순수함
티에리 피셔가 이끄는 서울시향은 카바코스가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순수한 바이올린 음에 세심하게 반응하며 연주의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공연 후반부에는 하이든의 교향곡 8번의 각 악장과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 6곡이 번갈아가며 연주되어 마치 새로운 초연작품을 듣는 듯 참신했다.

하이든과 드보르자크의 곡을 뒤섞어 연주하는 프로그램은 지휘자 피셔의 아이디어로, 작곡시기와 성격이 다른 음악작품들도 절묘하게 어울릴 수 있음을 느끼게 했다.

특히 하이든 교향곡 8번 중 3박자로 된 미뉴에트 악장에 이어 3박자의 슬라브 무곡 작품46의 6번이 연주되어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고, '폭퐁'을 표사한 하이든 교향곡 4악장에 이어 강력하고 역동적인 성격의 드보르자크 슬라브 무곡 작품72의 7번으로 공연을 마무리한 것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