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 미술관을 개관한 이희돈 화백이 전시장에 걸린 작품 앞에서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강화도에 미술관을 개관한 이희돈 화백이 전시장에 걸린 작품 앞에서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단색화가 이희돈 화백(70)은 1970년대 한국 화단에 풍미했던 ‘한국적 미니멀리즘(단색화)’에 동참하며 자연의 연기(緣起)를 회화로 표현해 왔다. 서울 북아현동에서 미술 재료 유통사업(홍주화방)을 하면서 화가로 변신한 그는 초창기에는 구상회화에 주목하다가 모노크롬(단색화)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달 30일 강화도에 개관한 이희돈뮤지엄.
지난달 30일 강화도에 개관한 이희돈뮤지엄.
이 화백은 1990년대 후반 캔버스에 작은 구멍을 촘촘하게 뚫는 타공 기법에 착안해 자신의 조형언어로 채택했다. 닥나무를 빻아 만든 한지에 아크릴 물감을 발라 캔버스에 숫자나 알파벳, 사람의 형상 같은 입체감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단색화 영역을 개척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세 번이나 입상한 그는 닥나무를 빻아 만든 물감으로 발명 특허도 취득했다. 2015년 부산아트페어에서는 인도의 5대 재력가 베누 스리니바산 TVS모터스그룹 회장(62)이 이 화백의 작품을 구매해 화제가 됐다.

이 화백이 최근 큰일을 벌였다. 지난달 30일 인천 강화군 불은면 고능리 446의 1 일대에 스튜디오를 겸비한 미술관(이희돈뮤지엄)을 연 것이다. 지상 2층 한 동에 연면적 1000㎡의 규모다. 총사업비 10억원을 투입했다. 건립 예산은 그동안 모은 자신의 재산을 쏟아부었다. 미술관은 스튜디오, 특별 전시관, 세미나실 등으로 꾸몄다. 그는 “미술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자 국가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예술과 지역 주민을 매개하는 소통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 화백은 지난 7일부터 개관 기념 개인전 ‘인연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를 시작했다. 캔버스 위에 그물망이나 스테인리스 망을 격자형으로 배열하고 20~30차례 반복적으로 색을 칠한 색채 추상화 대작 50여 점을 걸었다. 화려한 단색조의 직물이 펼쳐져 있거나 나무뿌리가 뻗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들이다.

이 화백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물감과 한지, 그물망 등 미술적 재료를 가지고 인간, 우주, 자연의 무수한 인연을 축조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운영하던 화방을 자주 찾은 도상봉, 손응성, 조용익, 이왈종 화백을 그림 스승으로 삼았던 작가는 평생 척박한 가난의 현장을 정직한 감성으로 화면 위에 재생시켰다.

이 화백은 “작품 소재를 주로 불교에서 찾는다”고 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제 작업은 불교적 연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불교 서적도 많이 읽었고요. 특히 화엄경에 나오는 ‘인다라망(因陀羅網)’의 글귀가 가장 와 닿아서 이것을 평생 화제(畵題)로 삼았죠.”

그는 인다라망의 의미에 대해 “세계를 구성하는 모두가 보석같이 참으로 귀한 존재이며 그 각각은 서로가 서로에게 빛과 생명을 주는 유기체로 더불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네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관계의 연속입니다. 젊은 시절 길거리와 극장, 공연장, 술자리, 시장 등에서 공교롭게 만난 사람들의 인연을 시각 예술로 표현한 게 벌써 50년 가까이 됐네요. 불교 교리를 전혀 담지 않은 일반 그림에서도 불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추상화를 선택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연(緣)’ 시리즈는 젊은 시절 불교에 대한 경험을 마치 재즈 음악처럼 풀어냈다. 채도가 높은 선과 면, 그물망과 철망의 그림자로 구성된 작품들은 과거 작업보다 한층 관념적이다. 강렬한 색감의 움직임을 통해 관람객과의 소통을 꾀하면서 ‘단색화의 힘’을 보여준다. 사실주의 풍경화에서 출발해 이제는 한국 화단에서 2세대 단색화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붓질이 이어질수록 변화하는 그림 맛에 취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작가는 의도하지 않은 색과 선, 점의 형태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회화란 내적 실재를 발견하는 통로입니다. 가령 화면에 구멍을 뚫고 그 위에 붓으로 묵묵히 평면의 정지작업을 해가는 일련의 작업 과정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작업 자체의 수행성이 하나의 목적을 띠고 있는 겁니다.” 사업을 하면서도 그림이 더 ‘고파’ 궁리했던 화가의 끝없는 미술수행이 이제는 현란한 색채와 인연의 흔적으로 피어나고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