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박돈 '해돋는 천지'
비로자나는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한 것이다. ‘햇빛이 온 세계 어느 곳에나 두루 비친다’는 광명편조(光明遍照)를 의미한다. 전국 사찰에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는 이름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신다. 부처의 ‘크나큰 선정(大寂)’과 ‘지혜의 빛(光)’을 온 누리에 두루 비추기 위함이다.

90대 원로화가 박돈은 평생 끝없는 번뇌와 변신 끝에 광명편조에 고무됐다. 인간의 근원적인 염원과 원초적인 힘을 햇빛에서 찾았다. 2010년에 완성한 ‘해돋는 천지’는 북녘 고향 황해도 장연현의 광명을 응축한 작품이다. 1949년 남으로 내려와 다시는 가보지 못한 고향에 대한 향수를 일출(日出)로 승화했다. 가장 미세한 붓으로 오랜 시간 하나하나 점을 찍어 그야말로 한 점 한 점 그리움을 새기듯 정성을 기울인 결과물이다.

넓게 펼쳐진 대지 위로 말을 타고 달리는 소년의 모습, 그 아래로 펼쳐진 산봉우리와 일출의 순간은 태초의 모습이자 우주의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유화물감의 기름진 느낌 없이 담백하고 편안하며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작품이 주는 큰 매력이다. 새해를 맞아 장엄하면서도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신비한 분위기의 햇빛이 그늘진 곳 하나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기를 기대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