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건축가 일데폰스 세르다가 고안한 바르셀로나의 주거 블록.  김영사 제공
도시건축가 일데폰스 세르다가 고안한 바르셀로나의 주거 블록. 김영사 제공
184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대중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용변을 보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길거리와 건물 옆에서 ‘급한 일’을 해결했고, 거리는 지저분했다. 1841년 처음 고안된 공중화장실이 널리 보급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소변은 지하통로를 따라 내려갔고, 낯선 사람 앞에서의 배설행위가 점차 수치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분뇨가 사라진 거리는 사교 공간으로 바뀌었다. 대로가 보이는 대형 야외카페는 그렇게 탄생했다.

공간과 장소는 이렇게 삶을 규정한다. 노동과 도시화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히는 리처드 세넷 뉴욕대·런던정치경제대 교수에 따르면 도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물리적 장소로서의 도시인 빌(ville)과 지각·행동·신념으로 편집된 정신적 도시인 시테(cit)다. 예컨대 열악하게 설계된 미국 뉴욕의 터널에서 발생하는 교통정체는 빌의 문제다. 이에 비해 수많은 뉴요커를 새벽에 터널을 지나 달음질치게 하는 무한경쟁은 시테의 문제다.

빌과 시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공중화장실이 야외카페를 탄생시킨 것처럼. 하지만 시테와 빌의 관계가 매끄러운 경우는 드물다. 도시는 여러 언어를 쓰는 다양한 성분의 이주자로 가득한 데다 불평등이 심하고 복잡해서 시테와 빌의 비대칭성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급팽창하면서 도시계획의 결과로 나온 빌이 시테를 왜곡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책마을] 다양성 포용하는 '열린 도시'에 살고 있나요?
세넷 교수는 《짓기와 거주하기》에서 도시가 인간에게 무엇이며 어떻게 지어져야 하는지를 폭넓게 검토하고 제안한다. 이 책은 세넷 교수의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 3부작의 완결편이다. 저자는 프로젝트의 첫 책 《장인》에서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기술’이 현대사회에서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설파했다. 다음 책 《투게더》에서는 실제로 일하는 데 필요한 기술인 ‘협력’에 주목해 사회적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짓기와 거주하기》에서는 호모 파베르가 문명을 탄생시킨 ‘도시’를 주제로 시테와 빌이 변주해온 역사를 탐색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전망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고대 아테네부터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뉴욕, 영국 런던, 중국 상하이까지 동서양의 주요 도시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돌아본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구글 사옥, 런던과 파리 지하를 거미줄처럼 연결한 하수시설, 남미 콜롬비아 메데인의 뒷골목과 인천 송도신도시 등을 둘러보며 물리적 도시 ‘빌’이 사람들의 일상을 얼마나 풍부하게 하고 유대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도시계획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제인 제이콥스와 루이스 멈퍼드는 물론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프리드리히 엥겔스, 막스 베버 등 주요 사상가의 생각과 문학작품을 섭렵하며 폭넓은 사유와 실질적 검토의 전형을 제시한다. 시테에 반응하는 빌을 건설하려고 애썼던 1850년대의 첫 도시계획 세대도 소개한다. 파리를 기동성 있는 네트워크로 개조한 오스만 남작, 바르셀로나를 위한 도시계획을 천으로 베를 짜듯 직조한 세르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설계하면서 자연환경에 건축 형태를 연결하는 원리를 도출한 프러데릭 로 옴스테드다. 이들은 각각 획기적인 도시설계의 업적을 남겼다. 오스만은 접근 가능한 도시를, 세르다는 평등한 도시를, 옴스테드는 사교적인 도시를 지향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시테를 이루는 특징적인 재료, 즉 군중에 대한 성찰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시카고 학파에 대해서도 저자는 비판적이다. 복합적 지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시카고 학파는 도시 전체, 사람들만이 아니라 도시의 물리적 형태까지 포용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작업은 시테를 강조하고, 빌은 무시했다고 꼬집는다. 시테의 풍부한 의미를 빌의 복잡성과 연결하지 못해 초래한 둘의 관계 단절을 ‘시테와 빌의 이혼’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저자는 특히 지어진 것과 사는 것, 즉 빌과 시테 사이의 균열이 도시의 팽창과 고속성장, 타자의 배제, 테크놀로지 이슈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건축적인 분리와 사회적 불평등이 서로를 강화하는 ‘닫힌 도시’ 대신 ‘열린 도시’를 제안한다.

열린 도시는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고 받아들이며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처럼 출입구가 있고 차량과 보행자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 ‘빗장공동체’다. 이주자와 난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절적 도시,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사회와 단절된 자족 공간인 구글플레이스가 그런 사례다. 스마트시티로 계획된 인천 송도신도시에 대해 저자는 모니터링이 과도하고 중앙집중화돼 다양성이 없다며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한 유령도시”라고 혹평한다.

책은 ‘도시를 위한 윤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이는 도시계획가를 위한 ‘열린 도시의 윤리’다. 저자는 “도시계획가와 도시 주민의 윤리적 연결은 어떤 종류의 겸손함을 실천하는 데 달려 있다”며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함께 작업해서 더욱 풍부한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열린 도시의 윤리’라고 강조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