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부문 - 손상준 씨
‘2020 한경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 손상준 씨는 “관객들이 쉽게 보고 잘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그 안에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2020 한경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 손상준 씨는 “관객들이 쉽게 보고 잘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그 안에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사실 2019년이 영화감독에 도전하는 마지막 해였어요. 가족들 경제 상황도 안 좋았기에 마냥 제 꿈만 좇을 순 없었거든요. 그렇게 제 인생의 두 작품을 썼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성공했네요. 하하.”

2020 한경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광복베가스’가 당선된 손상준 씨(42)는 “신춘문예에 처음 지원했는데 너무나 큰 행운을 얻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당선작 ‘광복베가스’는 그의 인생을 바친 시나리오 두 작품 중 하나라고 했다. 그가 당선 통보를 받았을 무렵 다른 한 작품은 때마침 한 투자사와 영화 제작을 위한 계약을 마치고 주연 배우 캐스팅까지 일부 완료한 상태였다. 손씨는 “영화판에서 일하다 보니 시나리오를 쓸 때도 제작비를 많이 고려하게 된다”며 “계약을 마친 작품은 제작비가 적게 드는 반면 ‘광복베가스’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 시대극이어서 한경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이 지닌 가능성을 평가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장래희망을 ‘영화감독’이라고 적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 ‘할리우드 키드’였다. 영화인에 대한 막연한 꿈을 키워왔던 그는 1998년 어느 영화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뒤 직접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2005년 개봉작 ‘청연’과 2006년 개봉작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제작 연출팀에서 일하며 영화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8년 개봉한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제작 당시 연출팀 경험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손씨는 “당시 감독님으로부터 ‘꿈이 영화감독이라면 직접 글을 써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0년 그가 처음 썼던 시나리오 ‘거위의 꿈’은 ‘KPIF 2010’에서 우수 프로젝트 작품으로 선정됐다. 이후 2012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우수상 등을 비롯해 올해 한경 신춘문예 당선작까지 그는 출품한 다섯 번의 공모전에서 모두 상을 받았다. 그는 “학창 시절 개근상장 하나 없는 내가 부모님께 자랑스럽게 보여드릴 수 있는 건 영화로 상을 받는 일이었다”며 “특히 신춘문예 당선은 꼭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고 말했다.

‘광복베가스’는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1990년대 초반 부산 광복동을 배경으로 한 범죄수사물이다. 승승장구하던 한 검사가 범죄와의 전쟁이 벌어질 당시 수사 실적을 올리기 위해 광복동에서 활약한 희대의 마약왕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왜 하필 부산이었을까. “초등학교 때 부산에 내려가 20대 초반까지 살았어요. 어린 시절 서면동 골목에서 봤던 호텔과 카지노, 밀수가 빈번했던 부산항, 일본에서 음성적으로 유입됐던 노래방 시스템 같은 유흥문화 등이 떠올랐죠. 특히 광복동엔 빠찡꼬가 들어왔던 기억이 났어요. 부산은 당시 어떤 항구도시보다 범죄와 유흥이 활발했던 곳이라 배경으로 삼고 싶었죠.”

등장인물인 박상철 부장검사와 마약왕 현태수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이 시나리오의 매력이다. 손씨는 “엔딩에 박 검사와 현태수가 지하철역에서 만나며 현태수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 부분이 하이라이트”라며 “반전 있는 영화에 많은 관객이 학습돼 있어 어떻게 반전 이후 엔딩까지 가느냐가 작품을 쓸 당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당선작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인물들의 성격이 명료하게 잡혀 완성도가 높고 흡입력이 있는 데다 장르적으로도 재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라며 “이야기 자체만 나열하면 캐릭터는 묻히게 돼 작품을 쓸 때 항상 이를 염두에 둔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또는 예비 영화감독으로서 그는 어떤 큰 꿈을 꾸고 있을까. “그동안 항상 두 부류의 작품을 써왔습니다. 가슴 따뜻한 휴먼드라마나 사회적 문제가 짙게 드러나는 장르물이었죠. 두 부류의 공통점이 있다면 관객이 쉽게 볼 수 있고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가 뭔지 알아들을 수 있는 시나리오라는 거죠. 무엇보다 이야기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주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습니다.”
개근상 하나 못 받아봤는데, 큰 생일선물 됐다
당선 통보를 받고


저녁 장을 보러 간 마트에서 옛날 소시지와 야채 소시지를 들고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선되셨습니다”라는 한마디에 쥐고 있던 야채 소시지를 그대로 툭 떨어뜨렸다.

9년 전 난생처음 쓴 시나리오로 예상치 못한 상을 받은 후 가졌던 뒤풀이 자리가 떠올랐다. 어깨에 잔뜩 부푼 희망 두 덩이를 얹은 나에게 누군가 그랬다. “너, 이 상, 니가 글 잘 써서 받은 거 아닌 거 알지?”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내가 남들보다 탁월해서 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9년 전 그날 내 어깨 위에 있던 희망 두 덩이는 세월을 거듭하며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이젠 흔적조차 없어진 지 오래다. 그 자리엔 내 계획엔 전혀 없었던 만성스트레스성 어깨통증이 대신하고 있다.

이젠 고생 끝났다며 착각했던 그때부터 또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써왔다. 밥벌이를 위해 쓰고 쓰다 보니 내 글이 아닌 남의 글만 ‘알맞게’ 쓰고 있었다. ‘이전만큼 쓸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광복베가스’를 쓰기 시작했고, 살아내느라 여유가 없어 낼 생각조차 못 했던 한경 신춘문예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응모했다.

학창 시절 개근상장 하나 받아오지 못한 아들이 글로 돈을 번다고 하면 늘 “니가?”라고 하시던 아버지도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고 하면 기뻐하실 거 같다. 2020년 1월 1일엔 아침 일찍 일어나 종이로 된 한국경제신문을 사러 갈 것이다. 그날은 마침 새해 인사에 묻혀 한 번도 제대로 축하받지 못한 내 생일이기도 하니까.

■ 손상준 당선자 약력

△1978년 서울 출생
△부산예술대 영화과 졸업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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