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자 정대건 씨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2020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자 정대건 씨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한 독립 장편영화가 지난해 영화관에서 개봉했어요. 그땐 물론 좋았죠. 이후 소속된 곳 없이 지내며 공백기가 점차 길어지자 공허함이 밀려오더라고요. 그 자리를 채워준 게 바로 소설이었습니다.”

2020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GV 빌런 고태경’으로 당선된 정대건 씨(34)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영화감독이었다. 철학을 전공한 정씨는 마냥 영화를 찍고 싶어 대학 4학년이던 26세 때 첫 독립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했다. 2017년 영화인을 꿈꾸는 동료들을 만나 함께 찍은 작품은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도 선정됐다. 그는 “영화 개봉 이후 다시 홀로 지내면서 심한 고립감을 느꼈는데 우연히 문학 관련 팟캐스트를 들었다”며 “‘소설이라는 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적합한 도구이자 통로’라는 내용을 들었는데 마치 지금 내 상황같아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막연히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게 한 계기는 장강명 작가의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이었다. 그는 “여태까지 소설은 다른 분야라는 생각에 엄두도 못 냈는데 그 책을 읽고 ‘한번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선 한 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문학 공모 심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배웠고,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공모가 있다는 것도 그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장편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완성해본 경험은 그에게 ‘장편소설 레이스도 완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그렇게 지난해 3월부터 도서관에 틀어박혀 무작정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화센터 소설 쓰기 수업도 찾아 들었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그래서인지 다른 생각 없이 달리기만 했죠. 단순히 쓰는 것에만 얽매이지 않고 작법서와 다른 소설들을 꾸준히 읽으면서 장편소설의 규격에 맞는 플롯이 뭔지도 깨우쳤습니다.”

당선작 ‘GV 빌런 고태경’은 영화라는 꿈을 꾸는 여러 청춘의 좌절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영화와 다큐멘터리 관련 이야기는 그의 실제 경험담이다. 정씨는 “다음 작품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나와 취업이나 합격 등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지금 청춘 모두 미래를 위해 유예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며 “꿈을 좇다가 그만두고 나오면 그 꿈에 애증과 미움이 생길 수도 있는데 소설을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정을 지닌 사람들을 응원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성인 정씨가 소설에서 여성 화자를 내세운 데 따른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팟캐스트에서 정유정 작가가 했던 말을 되짚었다. “정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에 남성 화자를 쓰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어요. ‘여성인 자신이 작품 속에 직접적으로 여성 화자를 쓰면 너무 자기 얼굴을 내미는 것 같다’고요. 제 소설 역시 제 얘기를 썼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거리 두기’가 중요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제작했던 그에게 소설은 ‘혼자 힘으로 뭔가를 완성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는 “소설은 좋은 의미에서 노트북과 손, 눈만 있으면 어떻게든 홀로 채워갈 수 있는 예술”이라며 “영화에선 표현할 수 없는 인물 내면의 모습, 갖가지 비유, 문장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영역들을 소설을 쓰며 발견해 힘듦보다 재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이 아니라 소설가로서 정씨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소설가가 돼야겠죠. 독자들이 제 소설에서 비치는 인물들의 감정이나 상황을 곱씹어보며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깊은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외롭고 행복했던 한 해…이제 다른 이야기 찾아 떠날 때
당선 통보를 받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시절, 도서관에 다녔다. 도서관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밤 10시까지 버티고 앉아서 쓸 때 맞은편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힘이 됐다. 도서관에 붙어 있던 ‘다독다독(多讀多讀) 내 꿈을 응원해주는 도서관’이라는 문구도 큰 힘이 됐다. 나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사랑하게 됐고 힘이 돼준 수많은 책 중에 내 책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이루면 그때 가서 나에게 선물을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던 나였다. 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먼저 나 자신에게 좋은 키보드를 선물했다. 그 마음가짐을 기억하고 살아갈 거다.

이야기의 세계에 온전히 몰두해서 보낸 지난 한 해는 참 외롭고 행복했다. 이제 열심히 다른 이야기를 찾아 떠날 차례다. 도대체 뭘 쓴다고 하루 종일 앉아 있는지 싶었을 아들을 응원해준 어머니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 독자를 만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린다.

■ 정대건 당선자 약력

△1986년 서울 출생
△고려대 철학과 졸업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