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로 두 번째 세종 연기
한석규 "제 연기가 물이라면, 최민식 형님은 불이죠"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 때는 세종이 아버지(태종)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세종이 어머니(원경왕후 민씨)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죠."
한석규(55)가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천문:하늘을 묻는다'(허진호 감독)로 다시 한번 세종 역에 도전한 이유다.

세종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달라진 이유는 뭘까.

23일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이런 답을 내놓았다.

"마흔 전까지는 제가 위인을 연기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어요.

마흔을 넘어가니 관심사가 저 자신에게 옮겨오면서 연기관도 달라졌죠.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연기가 남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보니 연기란 결국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고, 나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러던 중 만난 인물이 바로 이도(세종)입니다.

"
한석규 "제 연기가 물이라면, 최민식 형님은 불이죠"
한석규는 "제가 왜 연기를 하는지, 연기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제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그러면서 세종의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했다.

세종의 모친 원경왕후는 이방원(태종)이 왕위에 오르는 데 크게 기여하지만, 나중에 남편에 의해 친정이 멸문을 당하는 등 불행을 겪게 된다.

세종을 바라는 보는 시선과 해석이 달라진 만큼, 한석규의 연기 톤도 달라졌다.

"'뿌리 깊은 나무' 때는 아버지처럼 사람을 절대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세종을 연기했는데, '천문' 때는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가짐을 지닌 세종을 표현했죠."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고, 장영실과 함께 조선의 농민을 위해 독자적인 천문의기를 만든 것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석규 "제 연기가 물이라면, 최민식 형님은 불이죠"
한석규는 '쉬리' 이후 20년 만에 최민식과 한 작품에서 만났다.

동국대 선후배인 두 사람은 한석규 표현을 빌리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하는' 사이다.

"민식이 형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내게 연기란 죽어야 끝나는 공부'라고 말한 것을 봤는데, 그 말이 제게 쑥 들어왔죠. '아 나랑 같구나' 하고 느꼈죠."
한석규는 자신의 연기를 '물', 장영실을 연기한 최민식 연기는 '불'로 비유했다.

"민식이 형님은 활활 타는 불같은 사람이에요.

연기하기 전에 먼저 많이 태워야 합니다.

제 경우는 물처럼 모았다가 착착 뿌리는 스타일입니다.

"
'천문'은 세종과 장영실의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에 초점을 맞춘다.

한석규는 "장영실은 노비 출신인데도 관심사가 별, 천문 기기 이런 것들"이라며 "세종이 상상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니 세종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석규 "제 연기가 물이라면, 최민식 형님은 불이죠"
그는 대선배인 신구와 호흡을 맞춘 이야기도 꺼냈다.

'천문'에서 황희 정승으로 출연한 신구는 한석규와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최민식과는 연극 '에쿠우스'로 한 무대에 선 적이 있다.

'에쿠우스'는 최민식이 대학 졸업하자마자 주연한 작품.
"우리 때는 신구 선생의 연기를 많이 보고 영향을 받았어요.

그분의 연기는 다릅니다.

특유의 말투가 있죠. 이번 연기도 보면서 그분의 평생 화두가 '호흡'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연기자는 소리가 굉장히 중요한데, 어떤 호흡에 소리를 얹느냐가 특히 중요하죠. 그런 호흡을 신구 선생은 계속 연구하는구나 생각했죠."
그러면서 한석규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연기와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연기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해야 잘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것이란 무엇일까, 나는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살까, 항상 그런 고민을 합니다.

허허."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