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과학
[책마을] 복잡한 사회·자연현상, '연결망' 그리면 쉽다

1990년대 유행하던 벙거지 모자와 와이드 팬츠가 어떻게 2019년의 20대에게 다시 사랑받게 된 것일까? 경주와 포항의 지진 피해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을까?

복잡계 물리학자인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저서 <관계의 과학>에서 이런 질문들을 다음과 같이 바꿔 묻는다. “사건이 되고 현상이 되는 전체를 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 그는 이 책에서 우리 일상과 친구 관계부터 여러 사회현상과 자연현상까지 어떻게 작은 부분들이 전체로서의 사건이 되고 현상이 되는지를 통계물리학적 방법으로 조명했다. 저자는 “의미를 읽을 수 없는 많은 구성요소들이 모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전체는 새로운 거시적 특성을 만들어 내며 그게 현상이 되고 사건이 된다”고 말한다. 20년마다 찾아오는 유행과 각종 사회적 불평등, 지진과 태풍 같은 자연현상 등은 모두 그런 현상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인 ‘복잡계’ 안에서 이뤄진다는 주장이다.

그는 먼저 복잡계 중 하나인 인간 사회에 숨어있는 규칙과 패턴을 연결망(network)으로 그려 보여준다. 저자는 페이스북에서 서로 공통으로 맺고 있는 친구 수를 조사해 관계의 강도를 측정하는 연결망을 그려봤다. 페이스북 친구 관계에서 마당발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20대 국회에서 공동 발의 법안에 있는 국회의원 이름을 연결망으로 삼아 의원들 간 협력관계를 측정하기도 한다. 저자는 “연결망을 만들어봄으로써 우리 일상의 무작위하고 특별한 규칙이 없어 보이는 존재와 사건들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저자는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적 개념들을 갖가지 사회현상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촛불 집회 때 주최 측과 경찰 측 추산 인원이 다른 것을 설명하기 위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암흑물질’을 끌어온다. 저자는 “관계의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사회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올 하나 없는 그물 아닌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며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연결 구조는 전체를 보고 변화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한다. (동아시아, 344쪽, 1만5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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