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 43년만 첫 내한공연…보노 "감사합니다, 한국 대박이에요" 감격
초대형 스크린 웅장한 연출…설리·서지현 등 한국 여성 헌정 영상도
"평화의 길은, 하나가 될 때" 고척돔 울린 U2의 '원'(종합)
"평화로 향하는 길은 우리가 하나가 돼 노력할 때 찾을 수 있습니다…하나가 될 때!"
8일 밤, 경계선 너머 북쪽으로 사랑의 메시지, 평화의 기도를 보낸다는 보컬 보노의 외침 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 '원'(One)이 울려퍼졌다.

'하나의 사랑/ 하나의 피/ 하나의 생명…'(One love/ One blood/ One life…)
어둠으로 덮인 관객석에서는 휴대전화 불빛이 하나둘 켜졌고 스크린에 태극기가 등장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에 영감을 받아 만든 '원'을 마지막 곡으로 부르기 전, 보노는 "남북으로 나뉜 우리의 땅으로부터, 역시 남북으로 나뉜 여러분의 땅으로…"라며 고국 아일랜드의 아픔을 꺼내놨다.

"평화를 향한 우리나라의 여정에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영어에서 가장 힘이 센 단어는 '타협'(compromise)이라는 것이었죠."
독보적인 음악 세계와 시대 현실에 대한 고찰로 '현존하는 록의 전설'이 된 U2가 결성 4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고척돔에는 2만8천 명의 관객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이들의 첫 한국 무대를 뜨겁게 맞았다.

총 24곡 가량을 선사하는 동안 보컬 보노는 메인 무대와 공연장 중앙 돌출 무대를 연신 오가며 기교보다는 힘이 넘치는 절창으로 관객을 휘어잡았다.

기타리스트 디 에지는 U2 사운드의 상징인 영롱한 기타 톤을 흩뿌리며 공연장을 새로운 시공간으로 안내했다.

"평화의 길은, 하나가 될 때" 고척돔 울린 U2의 '원'(종합)
공연 포문을 연 것은 펄떡이는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Sunday Bloody Sunday)의 드럼 인트로. U2는 이어 '아이 윌 팔로'(I Will Follow), '뉴 이어스 데이'(New Year's Day) 등을 연이어 들려주며 고척돔을 단숨에 열광의 도가니로 이끌었다.

보노와 디 에지, 베이시스트 애덤 클레이턴은 관객석 쪽으로 다가가 호응을 유도했고 관객들은 양 팔을 들고 흥겹게 뛰기 시작했다.

U2 최고 명반 '조슈아 트리'(1987년 작) 첫 트랙으로 넘어가는 대목은 공연의 주요 전환점이자 백미 중 하나를 선사했다.

"테러의 시대, 관용을 간직합시다, 공포의 시대, 신의를 간직합시다!"
보노의 선창과 함께 초대형 스크린이 붉게 물들고 스크린에 그려진 '조슈아 트리' 형상이 반짝이며 빛났다.

이내 광막하게 뻗은 도로 영상으로 넘어가더니 '웨어 더 스트리츠 해브 노 네임'(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의 맑은 기타 전주가 울려 나왔고 고척돔은 함성으로 가득 찼다.

U2는 처음 만난 한국 관객들의 열정적인 떼창과 환호에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관객들은 '위드 오어 위드아웃 유'(With or Without You)를 비롯한 주요 곡들의 후렴구를 익숙하게 따라부르고 보노의 유도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아이 스틸 해븐 파운드 왓 아임 루킹 포'(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에서는 절도 있는 박수로 화답했고, U2가 깜짝 선사한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 후렴구도 함께 불렀다.

'웨어 더 스트리츠 해브 노 네임'이 끝나자 보노는 "오 마이!"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길고 긴 길이 우리를 드디어 서울로 데려다 놓았군요.

감사합니다.

"
강렬한 기타 리프의 '불릿 인 더 블루 스카이'(Bullet the Blue Sky)에 이어 서정적인 '러닝 투 스탠드 스틸'(Running to Stand Still)에선 에지가 건반을 잡았다.

이어 '레드 힐 마이닝 타운'(Red Hill Mining Town), '인 갓즈 컨트리'(In God's Country) 등 조슈아 트리 수록곡을 하나씩 들려준 뒤 U2 멤버들은 저마다 서울을 찾은 소감을 밝혔다.

"아일랜드인들이 한국인과 비슷하다고들 하던데, 들어봤어요? 흥이 많아서 그런가?"(보노)
"여러분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멋진 광경이네요.

처음 만났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느껴져요.

"(드러머 래리 멀린 주니어)
기타리스트 디 에지는 이틀이라는 체류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며 "얼른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말해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앙코르 전 공식적 마지막 곡인 '디자이어'(Desire)가 끝나고선 앙코르를 청하는 긴 함성이 이어졌다.

스크린에 형형색색의 연기가 나타나며 '엘리베이션'(Elevation)으로 문을 연 앙코르는 '버티고', '이븐 배터 댄 더 리얼 싱'(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뷰티풀 데이' 등으로 이어졌다.

'버티고'를 선보인 뒤 보노는 서툴지만 진솔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대박이에요"라고 털어놨다.

이날 공연에선 내한공연 역대 최대 규모로 가로 61m, 세로 14m에 달하는 초대형 스크린이 웅장한 영상 연출로 감동을 극대화했다.

스크린은 공연 분위기를 시시각각 전환하며 밴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사용됐다.

"평화의 길은, 하나가 될 때" 고척돔 울린 U2의 '원'(종합)
시대 현실을 직시해온 밴드답게 이들은 묵직한 정치·사회적 화두로 관객과 소통했다.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기려 만든 '프라이드'(Pride)를 부를 때는 꼭 39년 전인 1980년 12월 8일 총격에 숨진 존 레넌을 애도했다.

보노는 "39년 전 오늘 밤 우리가 잃은 '피스메이커' 존 레넌을 기억하자"고 청했고 관객들은 "워어오오, 오오오∼"하고 코러스를 따라 부르며 화답했다.

스크린에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생전 서신 내용이 비춰졌다.

앙코르 곡 '울트라바이올렛'(Ultraviolet)에서는 특히 한국 현실을 신경썼다는 티가 났다.

U2는 "세계 여성들이 단결해 역사를 새로 써 '허스토리'(herstory)'로 만드는 날이 바로 뷰티풀 데이"라고 운을 띄운 뒤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 최근 숨진 가수 설리와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 일제강점기 선구적으로 여성해방을 주창한 화가 나혜석,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 등 한국 여성들의 얼굴을 스크린에 비췄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도 스크린에 등장했다.

보노는 '마더스 오브 더 디스어피어드'(Mothers of the Disappeared)가 끝난 뒤 멘트를 통해 김정숙 여사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러브 이즈 비거 댄 애니싱 인 잇츠 웨이'(Love Is Bigger Than Anything in Its Way)를 부르기 전에는 너무 빨리 생을 마감한 이들을 위한 노래라며 "우리가 아는 전부는 사랑이 더 높은 법이라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사랑은 어떤 것보다 더 큰 거야",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등의 한글 문구도 스크린에 등장했다.

"평화의 길은, 하나가 될 때" 고척돔 울린 U2의 '원'(종합)
이날 공연장에는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공연장을 찾은 40∼50대가 많이 보였다.

오랜 시간 한국 록 음악 팬들이 이들을 기다려 왔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U2의 세계적 명성을 웅변하듯 외국인 관객 비중도 눈에 띄게 높았다.

천안에서 온 김호(48)씨는 공연에 앞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대학교 시절 록 음악에 미쳐있을 때 가장 좋아했던 밴드가 U2"라며 "비록 나도 U2도 나이가 들었지만 오늘은 20대 시절로 돌아가 보려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