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시리즈 PD 안준영 /사진=연합뉴스
'프로듀스' 시리즈 PD 안준영 /사진=연합뉴스
시청자들로부터 받은 유료 문자 투표, 그리고 연습생들 간 득표수 차이에서 발견한 놀라울 정도의 반복. 이는 조작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시즌 4인 '프로듀스X101'의 파이널 생방송에서 빚어진 투표수 조작 논란이 전 시즌(1~4)으로 번지며 시청자들은 물론,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습생들과 프로젝트 그룹에 선발됐던 멤버들까지 모두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다.

지난 5일 검찰이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에는 Mnet '프로듀스' 전 시즌에 걸쳐 조작이 이뤄졌다는 내용이 적시돼 충격을 안겼다.

공소장에 따르면 '프로듀스'의 연출을 맡은 안준영 PD는 그룹 아이오아이를 탄생시킨 시즌1 '프로듀스 101'과 워너원을 배출한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1차 탈락자 결정 당시 순위를 조작했다. 더불어 김용범 CP는 시즌2의 최종 생방송 경연에서 데뷔 순위인 11위 안에 진입한 연습생과 순위권 밖이었던 다른 연습생을 바꿔치기해 워너원 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즈원과 엑스원(X1)이 나온 시즌3 '프로듀스 48'과 시즌4 '프로듀스X101'에서는 투표결과와 상관없이 생방송 전 미리 데뷔 확정 멤버를 내정해두고, 순위까지 임의로 정해 그에 따라 득표수를 조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프로듀서'를 외치며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를 독려했던 것이 이미 시작 단계에서부터 어긋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중은 분노했다. 2016년 시작해 2019년까지 총 네 시즌을 거치며 꾸준히 제기되던 'PD픽'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프로그램에 높은 충성도를 보였던 시청자들 역시 피해자가 됐다.

검찰은 공소장에 CJ ENM이 유료문자대금으로 시즌3에서는 3600만3225원을, 시즌4에서는 8864만7073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고 적시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시청자들이 실제적으로 투표값을 받고자 한다면 1심 판결 이후 민사 소송을 제기해 집단소송 형식으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단, 판결에서 사건의 책임이 PD와 CP 개인이 되느냐, CJ ENM이 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실제적으로 배상이 가능한 '배상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프로듀스' 출신 아이즈원, 엑스원 /사진=한경DB
'프로듀스' 출신 아이즈원, 엑스원 /사진=한경DB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습생 및 데뷔 멤버들도 활동을 중단하고, 마녀사냥의 위험에 노출되는 등 또 다른 피해도 불거졌다. 조작 논란과 계약 시기가 겹친 아이즈원과 엑스원은 활동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아이즈원은 컴백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고, 가장 직전 시즌을 통해 탄생한 엑스원의 경우 활동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지만 그대로 발목이 묶여 버렸다.

활동이 종료된 워너원까지 고통받고 있다. 최종 데뷔 순위였으나 조작으로 인해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연습생이 있고, 반면 11위에 들지 못했으나 팀에 합류해 활동을 마친 연습생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이에 온라인 상에서는 과거 제작진이 워너원의 최종 선발을 알리며 일부 멤버들을 잘못 표기한 포스터를 공개했던 일까지 재조명됐다. 이를 바탕으로 누가 피해자인지, 조작 멤버인지를 알아내려는 온갖 추측이 쏟아졌다. 결국 거론되는 모든 이들이 상처를 입는 피해자였다.

그렇다면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연습생은 어떻게 보상 받을 수 있을까.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종 순위가 변경된 경우라면 연습생도 물론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지금은 회사가 아닌 CP와 PD만 기소된 상태다. 그들에게 소송을 건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배상 능력의 문제로 손해배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CJ ENM이 개입했다거나 방조했다는 등의 판결이 난다면 집단소송 등의 형태로 회사에도 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연예계 활동을 할 계획이라서 CJ ENM 및 Mnet과의 관계성을 생각한다면 개인이 걸기에는 쉽지 않은 문제일 거다. 더불어 기획사와 계약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결국 손해배상청구의 과정 역시 또 다른 부담과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노력과 흘러간 시간, 추가적으로 가해진 고통은 어떠한 물질적 보상으로도 회복되기 어려운 요소다.

그럼에도 여전히 '프로듀스' 조작 논란이 만들어낸 칼바람은 위험한 수위로 이곳저곳에 불어닥치고 있다. 안준영 PD에게 접대를 한 혐의로 기소된 연예기획사 관계자가 누구인지 보도되며 소속 연습생들이 줄줄이 거론, 마녀사냥 피해 우려까지 나왔다. '프로듀스'가 몰고 온 조작 논란에 마구잡이로 양산된 피해자들의 신음이 계속 높아만 가고 있다. 대체 누가, 어디까지 이 고통을 책임질 수 있을까.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