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화와 주거공간 개선방안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가장 먼저 발표하는 정책 중 하나가 됐다.
이는 지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개발 열풍은 언제부터 불었을까? 전통건축학자 이경아 씨가 펴낸 '경성의 주택지'는 우리나라 주택지 개발의 기원과 현상을 심도있게 추적했다.
저자는 서울시 한옥문화과 한옥정책연구팀장을 거쳐 현재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부교수로 재직한다.
우리나라에 주택지 개발 열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한 것은 100여 년 전이었다.
다음은 책에 기술된 당시의 경성 주택 상황-. "후암동 일대의 지가 변동 양상을 살펴보면, 개발되기 전 해당 지역 토지의 지목이 전(田)일 경우 1910년대 말 당시 평당 0.55원에서 2.6원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지목이 대(垈)로 바뀌면서 1.2원에서 6원까지 상승했고, 실제 분양될 때는 10원에서 36원까지 지가가 매겨졌다.
" 조선시대에는 집을 지으려는 사람과 지어주는 사람에 의해 주택 공급이 이뤄졌다.
하지만 100여 년 전부터 개발업자들이 도중에 끼어들었다.
이들은 자신이 개발한 주택지에 브랜드를 붙이고 다른 주택지와 차별성을 부각한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개발업자에 의한 주택지 개발이 이뤄지게 된 원인은 바로 '인구 폭증'에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조선시대 500여 년 내내 10만 명에서 20만 명 내외로 유지되던 한양의 인구가 불과 30여 년 만에 100만 명에 육박하면서 일제강점기의 경성은 엄청난 주택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개발자와 개발회사들이 앞다퉈 대규모 필지를 사들이고 택지로 개발해 비싸게 분양에 나섰다.
1920년대와 1930년대를 주름잡은 경성의 3대 주택지로는 삼판통(현재의 후암동 일대)에 개발된 학강 주택지, 장충동 일대에 개발된 소화원 주택지, 죽첨정(현재의 충정로 일대)에 개발된 금화장 주택지를 꼽을 수 있다.
이곳의 주택지는 관사지, 사택지, 문화주택지, 한옥주택지, 아파트, 영단주택지, 부영주택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주택지 개발 여파로 경성의 경계는 갈수록 확대된다.
그리고 주택이라는 도시 경관도 크게 바뀐다.
개발회사들은 별도 브랜드를 붙여 신문이나 잡지에 광고하고 분양 팸플릿을 배포하고 기자 설명회를 열어 '이상향'을 선전했다.
이 대목에서 지금의 재개발 건축 현장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데자뷔처럼 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주택 개발 대상지에 살던 원주민들은 삶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대립과 충돌도 끊이지 않았고, 부동산 투기와 같은 사회적 이슈도 항상 따라다녔다.
이 또한 이 시대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인다.
이번 책은 '우리나라의 대표 한옥단지, 가회동과 건축왕 정세권', '이상적 건강주택지, 후암동', '한양도성 밖 첫 한옥 신도시, 돈암지구', '최신 주거문화의 전시장, 충정로' 등 모두 12꼭지 주제로 해당 지역에서 일어난 주택지 개발과 주택 변화를 살펴본다.
저자는 "20세기 전반기 주택지는 우리나라의 건축·도시사에서 다양한 의미가 있다"며 "500여년간 서울의 물리적 경계였던 도성이 허물어지고, 금산 정책으로 지켰던 국유지와 삼림이 훼손되며 문화주택지가 들어서는 등 조선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났다"고 들려준다.
그 과정에서 이전 시대가 철저히 부정되면서 도시의 성격과 모습이 완전히 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최초의 아파트는 어디일까?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 건립자 도요타 다네마츠(豊田種松) 이름을 따서 '도요타아파트'로 명명됐다가 1970년대에 '유림아파트'로, 그 이후엔 지금의 '충정아파트'로 바뀌었다.
층수만 본래 4층에서 5층으로 증축됐을 뿐 거의 9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셈이다.
건축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인 이번 저서는 수십 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도 무심코 스쳐 지나기 쉬운 주택의 발자취를 속 깊이 알게 한다.
수백 장 건물 사진과 도면, 도시 풍경 자료도 삽입돼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시간 여행을 하는 기쁨도 안겨준다.
K컬처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다. 영화 '기생충' '헤어질 결심',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이 잇달아 흥행에 성공했다. K팝 아티스트들도 글로벌 무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뜨거운 K컬처 열풍에 해외에서도 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 <K컬처 트렌드 2023>은 K컬처에 관한 국내 전문가들의 다양한 분석과 전망을 담은 책이다. 정민아·이현경·이용철 영화평론가, 김영대 음악평론가, 고윤화 음악사회학연구자, 정명섭 소설가, 조일동 문화인류학자, 고규대·김성훈 기자 등 9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K컬처가 왜 세계인의 언어가 되었는지, 글로벌 MZ 세대는 K컬처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분석하고 예측한다. 책은 흥행 비결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코로나 확산 이후 콘텐츠 시장엔 다양한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엔 여름 대작들이 흥행에 잇달아 실패하며, 관객들은 더 많은 기대작과 화제작들을 만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의 인기는 높지만, 갈수록 잔인해져 우려를 낳고 있다. 저자들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개선할 방안을 모색한다. 이밖에 2023년 세계 경제가 한국 콘텐츠 산업에 미칠 영향, 메타버스와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인한 영향 등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분석한다.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말러·우리에게 다가온 러시아 오페라 ▲ 아르헤리치의 말 = 마르타 아르헤리치·올리비아 벨라미 지음. 이세진 옮김.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81)와 프랑스의 음악 저널리스트 올리비에 벨라미가 2004년부터 2019년까지 한 네 차례의 인터뷰와 구술을 정리했다. "삶을 부딪치면서 발견하고 싶었다", "좀 재미있지만 너무 우스꽝스럽지는 않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등 아르헤리치의 팬이라면 공감할 만한 말들이 많다. 저자인 벨라미에 따르면 아르헤리치는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고, 남의 재능을 찾아주고 응원하기를 좋아하며, 자신과 함께 살다가 헤어진 남자들에 대해서 한없이 관대하고, 늙어서도 다른 음악인들과 모여 살기를 꿈꾼다. 1980년대 중반부터 화려한 커리어의 독주자의 길보다 실내악 협연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아르헤리치는 "외로워서"라고 답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무대에서 열정적인 연주를 선보이는 그녀에게 나이 듦은 곧 선물과도 같다. "예전보다 낫다는 말을 곧잘 들어요. 내가 옛날에 녹음한 음반을 들으면 뭔가 좀 '신랄한' 느낌이 들어요. 지금은 더 둥글둥글하고 감싸는 느낌이죠." 마음산책. 280쪽. ▲ 말러 = 노승림 지음.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이자 대학에서 문화정책을 강의하는 저자가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궤적을 따라 여행하며 말러의 삶과 예술세계를 꼼꼼하게 살폈다. 말러가 묻힌 오스트리아 빈 외곽의 그린칭 묘지에서는 말러가 평생을 매달린 죽음이라는 주제를 사색하고, 말러가 전성기를 보낸 빈에서는 그가 유럽의 음악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자리에서 어떻게 분투했는지를 짚는다. 말러와 함
<모르페우스 출근하다>(밥북)는 김지홍 시인의 첫 시집이다. ‘다시 4월 봄비’ ‘모르페우스 출근하다’ 등 근작부터 ‘시간의 침묵’ 연작, 80년대 ‘우리 시대의 사랑과 절망과 자유와 진보와 보수와 통일’에 대해 생각하던 청년 시절의 시까지 60여 편을 담았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미련해서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한 시들이다. 시인이 버리지 못한 시들에는 삶의 고통, 부채감을 견디는 태도가 드러난다. “일용할 한 줌 희망을 사려고 시장에 갔습니다 좌판에 내팽겨쳐진 고통 한 바구니로는 택도 없었어요 엘뤼아르 씨의 흰 빵은 진즉 다 팔렸고 도스토옙스키 선생네 시든 파 세 뿌리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모두 어림없습니다 시간을 탕진한 자 얼마나 더 만근의 바윗돌을 옮겨야 할까요 나훈아 씨네 홍시 하나 달랑 들고 왔습니다”(죄 많은 사람) 시간을 탕진한 자는 바로 살아 있는 자. 고통 한 바구니 사서는 택도 없는 만근의 바윗돌을 옮겨야 한다. 일용할 한 줌 희망을 사려고 하지만 위대한 시인과 소설가의 좌판은 텅텅 비었거나 시들어 찾는 사람 없고 잘 익은 홍시 같은 유행가로 위안 삼을 뿐이다. 삶을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은 지금 여기에서 곧잘 우주의 시간으로 확장한다. “종로2가 맥도널드 앞에서, 8시 17분을 가고 있었다/8시 17분 저 건너에서 X1과 X2, X3/X떼가 펄럭이며 왔고… 머물고 있으므로 꿈꾸는,/살다 보면 장엄하게 우주의 시간으로 날아가는/8시 17분도 있을까…”(시간의 침묵 1) 자본주의가 창안한 효율적 사업 모델인 프랜차이즈 매장 맥도널드에서 시급으로 환산되는 8시 17분은 하나의 &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