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노규태 역 오정세 인터뷰
'하찮큐티' '노큐티' '노땅콩' 별명 얻은 오정세
오정세 "아직 인기 실감 안 돼"
"돈 빌려줘?" 건물주 갑질마저 '하찮고 사랑스러운' 오정세 사용설명서 (인터뷰)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서 찍으면서도 내내 즐거웠고 지금도 행복한 여운을 즐기고 있습니다. 시청률까지는 몰라도 내 역할을 잘만 연기하면 많이들 좋아해 주실 거라는 확신은 있었죠. 참 행복했고 아쉽습니다."

가게를 빼라는 압박, 양주를 시켰으니 땅콩을 서비스로 달라는 요구, 술에 취해 세입자인 여사장의 손목을 낚아채고 '왜 오빠라고 부르지 않냐'며 추태를 부리기까지. 성희롱과 갑질로 사회면을 장식했을 법한 악덕 건물주의 행위를 그야말로 '큐티'하게 소화해 낸 전대미문의 캐릭터가 등장했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잘나가는 이혼전문 변호사 자영(염혜란 분)을 아내로 둔 안경사이자 군수를 꿈꾸는 옹산의 자산가 노규태 역의 배우 오정세.
"돈 빌려줘?" 건물주 갑질마저 '하찮고 사랑스러운' 오정세 사용설명서 (인터뷰)

오정세는 데뷔 20년을 훌쩍 넘기는 동안 자신의 첫 주연 출연작 '남자사용설명서(2012)에서부터 '극한직업(2018)'의 테드 창까지, 개성 넘치는 역할들만 맡으며 극중 존재감을 한껏 발휘해 왔지만 20% 시청률을 넘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연기력은 물론 대중적인 사랑까지 그에게 안겨줬다. 명실공히 연말 방송대상 수상 유력한 후보로 등극시킨 것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 사랑받을 것이란 확신은 있었다지만 이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게 된 것이 얼떨떨하고 아직 실감이 되지 않는다는 그를 만나 소감을 들어봤다.

"노규태 역을 연기해야 하는데 요즘 사회 정서와 안 맞는 불편한 인물일 수도 있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임상춘 작가께서 '노규태는 좋은 사람이에요'하고 말해줬어요. 불편하지 않은 캐릭터로 비칠 수 있도록 노력을 했죠."

오정세는 "'동백꽃 필 무렵'을 찍으면서 뭉클했던 건 '작은 선의들이 모여서 큰 기적 만든다'는 메시지였다"면서 "종영하고 나니 스태프들의 작은 선의와 작은 행동들이 떠올랐다. 제작부는 일적인 스트레스 많은데도 새 대본 읽고 나면 다 씻겨 내려나는 느낌이라고 하더라. 화면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는데 노규태 방에 외로움 다룬 책을 소품으로 놓아달라고 했을 때 실은 귀찮고 불편할 수 있는데 기꺼이 해줘서 고마웠다"고 감사를 전했다.

오정세의 '동백꽃 필 무렵'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은 찌질한 진상이지만 미워할 수 있는 노규태가 이 시대 남성들의 단면이었기 때문이다.

"뭐? 네가 나를 존경한다고?"

집에서는 변호사인 아내에게 늘 무시당하고 밖에서는 땅콩 한 접시에 격노해 유치해지는 노규태. 늘 마음이 공허한 그는 동백(공효진 분)에게 찝쩍대려고 두루치기집 '까멜리아'를 드나들다 종업원 향미(손담비 분)의 "나는 사장님 존경하는데"라는 말에 영혼까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만다.

옹산의 차기 군수를 노릴 만큼 권력욕은 있지만 카톡 프로필에 '니즈'를 '리즈'라고 잘못 썼다가 자영에게 발로 차이며 무시당하고 옹산에서 유일하게 양주를 시켜 먹는 노규태지만 그에게는 절대 땅콩 서비스를 줄 수 없다는 동백의 단호함에 망신을 당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뭔지 모를 애잔함을 느꼈다.
"돈 빌려줘?" 건물주 갑질마저 '하찮고 사랑스러운' 오정세 사용설명서 (인터뷰)

값비싼 양주를 시키면서도 단돈 8000원 땅콩에 연연해 하는 모습은 존경과 사랑에 갈증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웃픔'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날 존경하지도 않지?"라고 자영에게 던지는 한 마디로 인해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건 어쩌면 유치하면서도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정세가 바라본 '노규태에게 땅콩이란' 어떤 의미일까.

"큰소리치는 이면에는 외로움으로 가득 찬 인물이잖아요. '땅콩'은 노규태의 심성과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외롭기도 하고 칭찬받고 싶어 하죠. 그런 노규태의 허세 표현할 수 있는 소품이자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오정세는 노규태 역을 밉상 맞게 표현하지 않기 위해 사소한 소품 하나하나와 대사 전달에도 큰 고민을 했다.

"동백에게 '전세 돌려줄까? 돈 없어? 돈 빌려줘?'라고 말하는 것도 철없는 노규태로 다시 돌아간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하지만 '고마워'와 '미안해'를 담은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동백에게 너무 고맙고 그동안 한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감정이거든요."

오정세는 "개성 넘치는 역할도 좋지만 진지한 로맨스나 남성미 철철 넘치는 몸짱 근육질 오정세로 변신도 꿈꾼다"면서 "대중들이 오정세에게 그런 이미지를 기대하지 않았겠지만 '그런 역할을 오정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역할에 도전해 그 또한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해내고 싶은 욕심도 있다"고 바람을 전했다.

"드라마 초반 촬영을 위해 포항 현장에 갔는데 새로온 제작부 직원이 '여긴 못 들어가십니다'라고 통제를 했어요. 그야말로 'No규태존'이었던 거죠. 불쾌하거나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아직까지 제 색깔이 대중들에게 박혀있지 않구나, 난 아직 나만의 캐릭터가 없으니까 앞으로 많은 변신을 할 수 있는 배우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어요. 스트레스를 받아도 저만의 발상 전환으로 기분 좋은 에피소드로 만들어요. 20년 후 이 일을 '이런 일도 있었어요'하고 소개해야지 하고 말이죠."

오정세는 "최근 인기를 어떻게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19회차가 방송될 무렵 스케쥴을 맞추기 위해 지하철을 탔던 일을 전했다. 그는 "아직 칭찬에 쑥쓰럽다"면서도 "하지만 지하철 승객들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옆에 있는 분들이 모두 '동백꽃 필 무렵' 다른 회차를 보면서 입가에는 미소가,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는 모습을 보며 행복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연기를 아주 잘할 자신은 아직 없지만 오래 할 자신은 있어요. 70대가 돼서도 지치지 않고 그 안에서 상처받으면서 또 거기서 의미 찾고 저만의 속도로 걸어가면서 연기를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걸음이 빠를 수도 있고 또 때로는 너무 천천히 가는 거 아닌가 실망감 줄 때도 있겠죠. 지금처럼 '동백꽃 필 무렵' 같은 작품을 만나 잘 될 때도 있고 아닐때도 있겠지만 계속 저만의 연기를 이어나갈 거예요.

'하찮은' 역할을 가장 '사랑스럽게' 소화해내는 남자. 오정세 그의 사용설명서 언박싱(unboxing)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