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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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 임산부인데도 김장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다니요."

출산을 한 달 앞둔 임산부 A씨는 어김 없이 찾아온 김장의 공포에 시달리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고민을 털어놨다.

A씨의 시집은 매년 300~350포기 정도의 김장을 한다. 김장을 하는 날이면 A씨는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친척들을 마주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내내 쭈그리고 앉아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다 보면 나중에는 허리와 다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아 고생하곤 했다.

문제는 만삭 상태인 자신에게 올해 역시 김장을 하러 오라고 제안한 시부모였다. 물론 거동이 불편해 적극적으로 김장을 도울 수 없겠지만 와서 얼굴이나 보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A씨는 부엌과 거실에서 북적이며 김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을 친척들 사이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남편이 딱 잘라 거부해주는 게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 생각했다. 매번 두루뭉술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남편에게 A씨는 이번에는 가지 않는다고 확실히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의 성격을 잘 아는 A씨는 이 마저 큰 기대를 할 수 없었다. 결국 며느리인 자신이 직접 몸 상태를 전하며 거부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것 같아 계속 스트레스만 쌓였다. 더욱이 아직까지 시집에 싫은 소리 한번 한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부담스러웠다.

해당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무엇보다 몸이 우선이다", "안 가는 건 허락이 아니라 통보만 하면 된다", "만삭에 김장이라니 개념이 없네", "만삭 때 뿐만 아니라 아이 어릴 때도 안 가는 거다", "남편한테 기대하긴 어려울 듯", "원래 임신 마지막 달에는 장거리도 가기 힘든 거 아닌가", "남편한테 시키지 말고 본인이 직접 이야기해라", "다른 친척들도 많은데 굳이 오라고 하네"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대상 종가집은 지난 10월 14~20일 블로그를 통해 총 3115명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올해 김장 계획'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4.9%가 김장 포기를 선언했다.

해당 설문을 통해 김장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주부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장 경험이 있는 주부 75.1%가 '고된 노동과 김장 후유증이 우려된다'고 답했으며, 육체적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58.7%로 정신적인 스트레스(13%)보다 월등히 높았다.

김장을 해 본 주부 4명 중 1명꼴인 24.8%는 김장 후유증을 병원을 방문한 적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장 뒤 후유증이 심한 신체부위는 '허리(44.4%)', '손목(23.3%)', '어깨(15.8%)', '무릎(15.5%)' 순이었다.

김장을 하는 작업과정 및 소요시간도 상당했다. 배추절임을 포함한 김장 시간은 응답자의 21%가 24시간 이상, 20%가 15~18시간을 꼽았다. 가장 힘든 과정으로는 '김장 속, 배추 버무리며 오래 앉아 있을 때(25.1%), '배추 절임, 무 썰기 등 재료 손질할 때(23.7%) 등을 골랐다.

결국 A씨는 김장을 하러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제 현실을 깨달았다. 시집은 만삭 며느리라도 김장 때 와 있어야 집안 구색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와닿았다"며 "출산 이후로도 김장하는 데는 가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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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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