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맨 끝줄 소년’의 클라우디오 역을 맡은 전박찬(왼쪽)과 안창현. 예술의전당 제공
연극 ‘맨 끝줄 소년’의 클라우디오 역을 맡은 전박찬(왼쪽)과 안창현. 예술의전당 제공
소년 클라우디오는 늘 교실 맨 끝줄에 앉는다.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자리. 하지만 그 자리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본다. 2015년 초연과 2017년 재공연 때 전석 매진을 기록한 서울 예술의전당 기획 연극 ‘맨 끝줄 소년’은 클라우디오가 같은 반 친구 라파의 가족을 관찰하고 글을 쓰면서 시작된다. 그러다 점점 글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소년의 위험한 욕망이 드러난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2년 만에 다시 오른 ‘맨 끝줄 소년’에 변화가 생겼다. 클라우디오 역을 초연 때부터 연기한 전박찬과 연극 ‘감자콘서트’ ‘뿔’ 등에 나온 안창현이 번갈아 맡는다. 두 배우는 클라우디오를 연기하며, 그가 바라본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들은 “소년이 본 세상은 ‘결핍’인 것 같다”며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인데 그 안에서 또 다른 결핍을 발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두 배우는 2013년 마요르가의 작품 ‘천국으로 가는 길’에도 함께 출연했다. 이들은 “클라우디오를 함께 맡게 돼 신기하고 기쁘다”며 “비슷한 듯 다른 두 명의 클라우디오는 관객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박찬은 삼연, 안창현은 초연의 부담을 갖고 있을 법하지만 이를 과감히 떨쳐내고 있다. 전박찬은 “초연 땐 조급한 마음에 빠른 템포로 연기했고, 재연 땐 글쓰는 연기에 집중했다”며 “이젠 인위적으로 성숙해지려 하지 않고 감각을 자연스럽게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안창현도 일부러 차별화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박찬과) 달라야 한다고 의식하면 더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죠. 제 느낌에 따라 연기하면 조금씩 호흡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클라우디오는 지켜보기만 하던 라파 가족의 일상에 직접 개입하려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소년은 서늘할 정도로 냉정함을 유지한다. 전박찬은 “예전에 연습할 땐 감정이 격해져 울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며 “그런데 클라우디오가 관찰한 것을 고스란히 글쓰기로 표현하기 위해선 보다 차갑고 단단한 태도를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 했다. 안창현도 연기할 때 이 점을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다. “손원정 연출가가 늘 제게 ‘속은 뜨겁게, 표현은 차갑게’라고 얘기하세요. 그래도 뜨거워지는 순간이 정말 많아요. 평범한 아이가 아니다 보니 차가움을 어떻게 표현할지 늘 고민하며 연기하고 있습니다.”

극에선 클라우디오와 문학교사 헤르만의 관계가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헤르만은 소년의 글에 매혹돼 더 발전시키려 한다. 그러다 그의 위험한 글쓰기를 눈치 채지만 멈출 수 없게 된다. 이 역은 초연 때부터 함께한 박윤희가 맡는다. 전박찬은 “헤르만은 클라우디오가 처음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상대이자 문학적 동지”라고 설명했다. 안창현은 “헤르만과 단둘이 만나 작문 수업을 받는 장면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이 장면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싶다”고 했다. 공연은 다음달 1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