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조성진 공연 리뷰

오케스트라가 갑자기 강한 악센트로 음을 강조하자 옆자리에 앉은 관객이 웃음을 터뜨렸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난 극적인 반전에 웃음이 터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클래식 음악으로도 청중을 웃고 울게 만드는 지휘자, 야닉 네제 세겐 지휘였기에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지난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 세겐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흥미진진한 연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잘 알려진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의 전악장이 연주되는 동안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세겐의 지휘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흥미진진한 교향곡"
1악장 도입부에서부터 첼로를 비롯한 중저음 현악기들의 연주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느린 템포의 1악장 서주는 자칫 지나치게 늘어지거나 리듬의 골격이 무너질 수 있지만 세겐은 처음부터 오케스트라를 잘 리드하며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그의 표정과 몸짓을 눈여겨보기만 해도 음악이 보일 정도였다.

세겐은 지휘를 통해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소통의 달인이었다.

덕분에 그의 지휘에 동작 하나에도 오케스트라는 여리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다가도 다음 순간 확신에 찬 어조로 폭발적인 절규를 토해냈다.

세겐이 지휘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은 인간의 목소리가 편성된 곡도 아니고 극적인 내용이 담긴 표제음악도 아니지만, 그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때때로 노래와 극이 있는 오페라처럼 들렸다.

1악장과 2악장에서 플루트와 잉글리시 혼, 바이올린 등이 솔로를 선보일 때마다 마치 오페라의 주인공들이 아리아를 노래하듯 서정적인 분위기가 감돌았고, 4악장에선 초반부터 긴박감 넘치는 리듬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흥미진진한 교향곡"
이번 공연 전반부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에는 트롬본 3대를 비롯해 소리가 큰 관악기들이 다수 편성된 데다, 이번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 섹션에만도 8명이나 되는 많은 연주자가 참여했기에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피아니스트에게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뚫고 돋보여야 하는 부담을 느낄 만한 무대였다.

그러나 조성진은 큰 소리로 오케스트라에 대항하기보다는 오케스트라의 악기 하나하나의 연주에 조화를 이루며 실내악을 연주하듯 하모니를 이뤘다.

세겐이 지휘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색은 매우 감각적이고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감성적인 측면을 잘 살려냈는데, 이는 조성진의 섬세하고 우아한 연주와 잘 어우러졌다.

조성진은 1악장 말미의 화려한 카덴차에서도 거침없는 피아노 연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으며, 느린 2악장에서 선보인 시적인 피아노 연주는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