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방어·옥돔·메밀·꿩·흑돼지 입맛대로 즐겨라

쌀쌀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이 어느새 제법 깊어졌다.

"한라산도 식후경" 제주 가을·겨울 관광 별미는?
올레길을 걷기 위해 또는 한라산의 가을 풍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제주를 찾는 요즘 제주에선 뭘 먹어야 할까.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단연코 '갈치'를 선택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가을 갈치는 '돼지 삼겹살보다도 맛있고 은빛 비늘은 황소값보다도 높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가을 갈치에 잘 익은 늙은 가을 호박을 넣어 끓인 갈칫국은 환상적인 조합이 된다.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과 젓가락으로 툭 떼어 낸 갈치살의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끓는 물에 갈치를 토막 내어 넣고 거의 익을 때쯤 채소를 넣어 마지막에 국간장으로 간을 하면 되는 초간단 음식인 갈칫국.
그 맛의 시작과 완성은 재료의 싱싱함에 있다.

"한라산도 식후경" 제주 가을·겨울 관광 별미는?
다른 지역에서 갈치로 국을 끓여 먹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흰살생선임에도 지방이 많아 싱싱한 갈치가 아니면 비린내가 나서 국을 끓일 수 없다.

제주에서는 당일 조업해 잡은 '당일바리' 은갈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국을 끓여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즘에는 기술이 발달해 먼바다에 가서 여러 마리를 한 번에 낚아 올리는 '주낙'으로 갈치를 잡아 선상에서 바로 급속냉동한 갈치가 있기는 하지만, 최고 중의 최고는 가까운 바다에서 한 마리씩 '채낚기'로 잡은 당일바리 생갈치다.

냉동갈치와 생갈치는 조리 후 그 질감과 맛에 차이가 있다.

생갈치로 끓인 경우 맛이 더 달착지근하고, 갈치살이 더 부드럽다.

이외에도 제주에서는 은갈치를 재료로 갈치구이, 갈치조림, 회를 만들어 먹는다.

싱싱한 은갈치의 비닐을 벗겨내지 않고 내장만을 제거한 뒤 등에 칼집을 내어 굵은 소금만 뿌려 구워 먹는 갈치구이의 고소함이나 '밥 도둑'이나 다름없는 갈치조림의 맛 역시 일품이다.

"한라산도 식후경" 제주 가을·겨울 관광 별미는?
청정 제주바다에서 잡히는 방어도 빼놓을 수 없다.

찬 바람이 부는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방어를 맛볼 수 있는 시기다.

윤기 흐르는 두툼한 방어 회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입안 가득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밀려온다.

방어에는 DHA, EPA 같은 불포화 지방산이 많고 비타민 D도 풍부해 고혈압, 동맥경화, 심근경색, 뇌졸중 등 순환기계 질환의 예방은 물론 골다공증과 노화 예방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1∼24일 제주 모슬포항 일원에서 열리는 최남단 모슬포 방어축제장에서 싱싱한 방어를 맛보는 것도 좋다.

'생선 중의 생선'이라 일컬어지는 옥돔은 12월에서 2월인 한겨울에 가장 맛이 오른다.

제주에서는 옥돔만을 유독 '생선' 또는 '솔라니'라고 불러 갈치나 고등어 등 다른 어류보다 귀하게 대접했다.

옥돔의 배를 갈라 손질한 후 찬바람이 나는 그늘에서 고들고들하게 말린 뒤 배 쪽에 참기름을 살짝 발라 구워 먹는 옥돔구이는 영구불변 제주의 맛이다.

옥돔은 살이 단단하면서도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해 죽이나 국을 끓여 회복이 필요한 환자에게 먹였다.

"한라산도 식후경" 제주 가을·겨울 관광 별미는?
겨울에 나는 중요한 제주의 식자재로는 메밀이 있다.

특히 겨울 메밀과 겨울 무로 만든 빙떡은 제주의 별미음식이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자주 찾게 되는 웰빙음식 중 하나다.

먹을 것이 귀했던 겨울에는 중산간(해안과 산지의 중간지대)에서 꿩 사냥을 했는데, 꿩을 삶은 국물에 메밀반죽으로 면을 만들어 무채와 함께 끓인 꿩메밀칼국수도 많이 먹었다.

이쯤 되면 사시사철 언제나 먹어도 맛있는 제주의 흑돼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글지글 피어오르는 숯이나 연탄불 등의 석쇠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은 제주흑돼지를 멜젓(멸치젓의 제주어)에 찍어 한입 가득 먹은 관광객들은 감탄사를 쏟아내기 마련이다.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식감에다 씹을수록 살며시 배어 나오는 육즙, 고소하면서도 비리지 않은 비계는 차원이 다른 돼지고기 맛을 선사한다.

여기에다 멜젓의 깊은 바닷내음까지 더한 제주 흑돼지의 맛은 단연 최고다.

30∼40년 전까지 '돗통시'라고 하는 돌담으로 두른 변소에서 길러지면서 청소부(?) 역할을 도맡아 '똥돼지'라는 별명을 얻었던 제주흑돼지는 유명하다.

굳이 흑돼지가 아니더라도 제주의 돼지고기는 다른 지역의 돼지고기보다도 맛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라산도 식후경" 제주 가을·겨울 관광 별미는?
돼지고기로 만드는 대표적인 제주향토음식은 돔베고기다.

제주 사람들에게 돼지고기는 언제나 즐겨 먹는 음식이라기보다 마을 잔치가 있을 때나 어렵사리 먹을 수 있었던 행사용 음식이었다.

집안의 대소사에 손님 접대를 위해 돼지를 잡고 뼈나 내장 등 부위는 국물 음식으로 이용했고, 살 부위를 편육으로 만들었는데 바로 이것이 돔베고기다.

다른 지역의 편육과는 달리 삶은 고기를 누르지 않고 뜨거울 때 도마에서 썰어서 먹던 데서 유래됐다.

돔베는 도마의 제주 사투리다.

돼지를 삶았던 국물에 제주 사투리로 '몸'이라고 하는 모자반과 배추·무 등을 넣고 끓여 '몸국'을 만들기도 했다.

돼지고기육수에 국수를 말아 돔베고기를 고명으로 얹으면 고기국수가 된다.

보통 다른 지역의 잔치국수는 쇠고기 육수나 멸치육수에 소면을 사용하지만, 제주에서는 돼지고기육수에 중면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제주향토음식 명인인 고정순 제주향토음식연구소장은 "제주 향토음식의 맛은 재료의 신선함에 있다.

아침 새벽 공판장에서 사와서 당일 밥상에 올려야만 제주 특유의 맛이 나오는 것"이라며 "요즘 제철인 갈치가 맛이 제일 좋다.

싱싱한 각재기, 옥돔, 메밀 등이 시기에 맞춰 차례로 나오기 때문에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제주 향토음식을 맛있게 즐기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라산도 식후경" 제주 가을·겨울 관광 별미는?
[※ 이 기사는 '제주향토음식도록'(제주특별자치도), '맛과 건강을 창조하는 제주향토음식 20선'(제주특별자치도·제주대학교), '제주의 농촌밥상을 엿보다'(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등 책자를 참고해 제주향토음식을 소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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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