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디자인의 뿌리'로 불리는 바우하우스가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단순하면서도 기능에 중심을 둔 현대의 디자인이 여기서 탄생했다.

독일관광청 초청으로 바우하우스의 혁명적인 생각이 투영된 공간이 있는 크레펠트, 에센, 프랑크푸르트를 돌아봤다.

◇ 현대 건축과 디자인 탄생시킨 바우하우스

올해는 바우하우스(BAUHAUS) 창립 100주년이다.

국내에서 영화 '바우하우스'가 개봉했고, '바우하우스와 현대 생활'을 주제로 하는 전시회가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바우하우스가 태동한 독일에서는 올해 내내 관련 전시회와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도대체 바우하우스는 무엇일까.

바우하우스는 1919년 설립돼 1933년 폐교될 때까지 지속했던 전혀 새로운 형태의 예술학교다.

이 학교는 20세기 건축과 디자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의 건축, 가구, 식기, 생활용품 등에 나타나는 기하학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 규격화된 건축 자재와 조립식 건물은 모두 바우하우스를 모태로 한다.

바우하우스 건축가와 예술가들은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철골과 유리로 지은 빌딩, 조립식 주택과 주택단지, 현대식 주방, '락앤락'을 연상케 하는 유리 용기 등을 100년 전 이미 만들어냈다.

모두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바우하우스의 철학에 따라 제작된 것들이다.

바우하우스는 '건축'을 뜻하는 바우(Bau)와 '집'을 의미하는 하우스(Haus)를 조합한 말로 '집을 짓는다'는 뜻이다.

초대 교장인 발터 그로피우스가 명명한 이름으로, 그는 공예, 회화, 디자인 등을 통합한 건축을 추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이들이 폐허를 딛고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바우하우스에서는 위계나 차별을 없애기 위해 선생을 '마이스터'(명인), 학생을 '직공'이나 '도제'로 불렀다.

마이스터의 면면은 대단했다.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바실리 칸딘스키를 비롯해 전위 무대 미술가인 오스카 슐레머, 색채 전문가 요하네스 이텐,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인 파울 클레, 판화가 라이오넬 파이닝거 등 당대 최고 예술가들이 교육을 선도했다.

이들은 예술, 공예, 기술, 건축 등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자유로운 예술가를 길러냈다.

바우하우스는 신고전주의 건축물을 선호한 히틀러가 집권한 직후인 1933년 4월 '퇴폐적'이란 이유로 폐교됐다.

하지만 마이스터와 학생들은 미국, 파리, 런던 등지로 망명해 바우하우스의 철학을 전 세계에 퍼뜨렸다.

[바우하우스 100년] ① 탄광촌에서 문화도시로…에센

◇ 바우하우스 철학 담긴 '샤프트 12'

독일 에센은 19∼20세기 독일 경제발전을 이끈 루르 공업지대의 중심지였다.

이곳 촐페라인 탄광의 역사는 인근 철강 도시에 석탄을 공급하기 위해 1847년 수직 갱도를 파며 시작됐다.

최대 8천 명의 노동자들은 매일 1만2천t의 석탄을 생산했다.

많은 우리나라 광부가 일했던 곳으로, 영화 '국제시장'에서 독일 탄광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유럽 최대 규모의 촐페라인 탄광은 1986년 공해 문제로 가동을 멈췄다.

그리고 탄광과 코크스 공장 등은 1990년대 들어 '변환을 통한 보존'(Preservation through conversion)을 모토로 복합 문화단지로 변신했다.

이어 2001년에는 산업유산으로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옛 탄광 건물과 루르 지방의 자연·역사·문화를 보여주는 루르박물관, 세계 최대 디자인박물관인 레드닷 디자인박물관, 수영장과 아이스링크, 식당과 카페, 호텔이 들어선 이곳에는 매년 150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촐페라인 탄광은 크게 '샤프트 12', '코크스 공장', '샤프트 1/2/8'로 구성된다.

전체 면적은 100㏊, 남겨진 건축물은 65개에 달한다.

견학은 1932년 마지막으로 건설된 갱도인 '샤프트 12'(12번째 갱도)에서 시작한다.

샤프트 12에는 예전 석탄 세척공장, 중앙제어실, 전기실, 보일러실, 고압·저압 압축실 등으로 사용됐던 건물들이 예술품처럼 들어서 있다.

샤프트 12는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제자인 프리츠 슈프와 마르틴 크레머가 설계했다.

바우하우스의 철학에 따라 건설된 20개의 건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석탄 채굴을 위한 작업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 건물들은 운영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이란 평가를 받았다.

[바우하우스 100년] ① 탄광촌에서 문화도시로…에센

정문으로 들어서면 장난감 블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붉은벽돌 건물이 정면과 좌·우측에 질서정연하게 들어서 있다.

정면에 있는 건물 위로는 갱도에서 나온 석탄을 끌어 올리는 장치인 권양탑이 A자로 솟아 있다.

에센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기능성과 뛰어난 조형미를 갖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창문이 가로로 길게 이어진 2층의 붉은벽돌 건물(옛 중앙제어실과 전기실)이 마주 보고 있다.

두 건물 사이 끝에는 하늘을 향해 凸 자로 솟은 건물(옛 보일러실)이 있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이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튼튼하게 잘 지은 유럽의 성채처럼 느껴진다.

옛 보일러실 건물은 현재 레드닷 디자인박물관으로 이용된다.

5개 층, 4천㎡가 넘는 공간에는 자동차, 가구, 주방 기구, 공구, 조명 등 디자이너라면 꼭 봐야 할 작품 2천여 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품은 모두 '디자인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바우하우스 100년] ① 탄광촌에서 문화도시로…에센

권양탑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촐페라인에서 가장 큰 건물인 옛 세척공장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 보호를 위해 외부에 설치된 가파른 오렌지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4m 높이에 있는 출입구로 들어설 수 있다.

이 오렌지색 에스컬레이터를 비롯해 내부에 있는 루르박물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했다.

로비에서 방문자센터와 카페, 서점을 둘러본 후 계단을 이용해 건물 위쪽으로 이동했다.

계단에는 촐페라인 탄광에 있는 각 건물의 모형이 예술작품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공간과 산업유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멀티미디어로 보여주는 곳을 지나면 공장 내부로 이어진다.

그곳에는 세월의 무게가 더해져 빛이 바랜 육중한 기계와 구조물이 가득하다.

거대한 강철 용기, 톱니바퀴와 벨트, 파이프라인, 사다리와 이동로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지나칠 수 없다.

방문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기계에서는 해당 작업공정을 보여주는 영상도 나온다.

계단을 더 올라 45m 지점은 전망대다.

권양탑과 주변의 건물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고, 코크스 공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건물 이외 빈 곳은 초록빛 싱그러운 숲으로 채워졌다.

이곳이 검은 석탄 가루 날리던 탄광이었나 싶다.

멀리 에센 시내도 보인다.

건물 뒤편으로 이동해 지하로 내려가자 옛 광부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석탄 가루를 뒤집어쓴 채 작업하거나 쉬면서 음식을 먹는 광부들의 사진을 비롯해 착암기와 도끼, 삽 등 채굴 도구, 조명과 변기 등이 전시돼 있다.

아쉽게도 사진 속에서 한국인 광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바우하우스 100년] ① 탄광촌에서 문화도시로…에센

◇ 박물관, 식당, 체육시설이 있는 복합문화지대

자작나무 싱그러운 숲길을 통과해 10여 분을 걸으면 1961년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설계된 코크스 공장에 닿는다.

건물 한쪽에는 스파게티, 소시지 수프 등 지중해식 메뉴를 내는 '코크스-카페 & 식당'이 들어서 있다.

2층으로 오르자 전면 유리창을 통해 공장 안쪽이 들여다보인다.

공장 안쪽에서는 각종 영상물이 벽면과 기둥에 투사되고 있었다.

촐페라인 탄광에는 고급 메뉴를 내는 '카지노 촐페라인', 스낵·케이크·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 촐페라인'도 있다.

식당 맞은편으로 걸음을 옮기자 코크스 공장의 외관이 눈 앞에 펼쳐진다.

기다랗게 뻗은 건물과 나란하게 들어선 높은 굴뚝, 각종 구조물이 물이 가득 담긴 수조에 투영돼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이곳은 겨울이면 길이 150m의 아이스링크로 변신한다.

식당 맞은편 건물 위쪽에는 실외 수영장도 있다.

'샤프트 1/2/8' 구역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 도예가 이영재 씨가 운영하는 마르가레텐회에(Margaretenhoehe) 도자기 공방도 있다.

우리나라 감성이 듬뿍 담긴 접시와 그릇, 주전자, 화분, 꽃병 등 작품을 감상하고, 도자기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에는 총 67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도 이 구역에 문을 열었다.

가이드 페터 로이터 씨는 "개인이 투자해 샤프트 1/2/8 구역에 호텔 문을 열었듯이 이 구역의 건물들은 앞으로 개인들의 투자를 받아 사무실, 식당과 카페, 교육과 이벤트를 위한 공간 등으로 변신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바우하우스 100년] ① 탄광촌에서 문화도시로…에센

◇ 도심에서 만나는 흥미로운 건물들

에센 중앙역 남쪽에 있는 폴크방박물관에서는 바우하우스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시리즈로 열고 있다.

바우하우스 마이스터로 활동한 화가 '라이오넬 파이닝거'를 주제로 바우하우스의 초기를 엿보는 전시를 진행했고, 9월 초순까지는 '세계를 향한 무대'(Staging the World)를 주제로 1921년부터 1929년까지 바우하우스에서의 공연문화 수업 장면을 사진, 스케치, 그래픽으로 들여다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내년 1월 12일까지 진행되는 세 번째 전시는 바우하우스의 사진과 영화에 관한 것이다.

도시 남서쪽에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전원주택단지라고 할 수 있는 마르가레텐회에(Margarethenhoehe)가 있다.

독일 기업 크룹이 직원들을 위해 1909∼1934년 조성한 주택단지로 서로 엇비슷한 디자인의 현대적인 주택은 위생시설을 갖췄고, 정원도 있었다.

주민 복지를 위해 슈퍼마켓, 학교, 교회, 도서관도 들어섰다.

이곳은 한때 예술가들의 거주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에센은 바우하우스와 관련된 건축가와 예술가가 많이 활동했던 곳이다.

에센 도심을 거닐다 곳곳에서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창이 많은 붉은벽돌 건물을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거대한 에센 시청사, 독특한 디자인의 구 유대교 회당, 마크트교회도 찾아볼 만하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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