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향기 호연 빛나…유니버설발레단 '발레 심청' 리뷰
'발레 심청'이 빚어낸 절절한 한국적 아름다움

유니버설발레단(UBC)의 정체성과 같은 작품 '발레 심청'이 3년 만에 무대에서 부활했다.

우리 고전 '심청전'을 클래식 발레에 녹여낸 '발레 심청'은 1986년 UBC 제1대 예술감독 아드리안 댈러스 안무로 시작해 업그레이드를 거친 작품이다.

1세대 발레리나인 문훈숙·최민화·김인희를 비롯해 김세연·황혜민·강미선 등이 심청으로 날아올랐다.

30년 넘게 12개국 40여개 도시에 서며 갈채 받은 한국형 발레가 고향인 이번 무대에서 어떻게 비쳤을까.

'발레 심청'의 핵심 가치는 서양에서는 다소 낯선 효(孝)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영문판은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를 특히 강조한다'고 풀이한다.

자식의 희생으로 아버지 눈을 뜨게 한다는, 외국에선 생소한 이 개념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아름다운 무대와 절묘하게 만나 설득력을 갖는다.

지난 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기자가 본 회차에서는 UBC 수석무용수 홍향기가 '심청'을 연기했다.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용왕'을, 이동탁이 '왕'을 맡았으며 간토지 오콤비얀바가 '선장'으로 변신했다.

1막에서 심봉사가 지극정성으로 어린 심청을 키우는 대목은 잔잔한 미소를 자아냈지만, 훗날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가는 심청과 아버지의 애끊는 이별 대목은 객석마저 탄식하게 했다.

러시아 지휘자 미하일 그라노브스키의 섬세한 지휘 아래 슬픔은 극대화했다.

대체로 재정이 넉넉지 않은 민간 발레단에서 녹음 반주(MR) 대신 오케스트라 음악을 고집한 뚝심이 빛난 순간이었다.

'발레 심청'이 빚어낸 절절한 한국적 아름다움

또 선원 군무는 기존 발레의 틀을 깬 강렬한 남성 발레와 무술 동작을 접목한 고난도 안무로 눈길을 끌었다.

몽골국립오페라발레단 출신으로 2017년 입단한 간토지 오콤비얀바는 매력적인 악당 선장 역을 역동적으로 소화했다.

2막에선 무대미술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했다.

바다처럼 푸른 용왕의 옷과 신비로운 움직임은 객석을 바닷속으로 끌어들였다.

화려한 용궁을 배경으로 인어, 물고기, 진주들이 펼치는 디베르티스망(줄거리와 무관한 볼거리 위주의 춤)은 UBC '코르 드 발레'(군무진)의 높은 수준을 입증했다.

3막에서 심청은 용왕의 배려로 연꽃을 타고 지상세계로 올라가 왕과 사랑에 빠진다.

달 밝은 밤 왕과 추는 달빛 파드되(2인무)는 사랑스럽고 애틋하다.

학창 시절부터 오랜 동료인 홍향기-이동탁은 지난달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서로를 가장 잘 아는 파트너"라고 했는데, 세월이 빚어낸 호흡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심청이 왕비가 된 이후 의상이 무용수 발동작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건 단연 홍향기였다.

대사 한마디 없이 몸이 곧 악기가 됐다.

맑은 눈으로 흐느낄 땐 관객을 울렸고, 사랑의 기쁨으로 날아오를 땐 객석마저 벅차오르게 했다.

인터뷰에서 언젠가는 무대에서 내려와 소박하게 살고 싶다 했던 그이지만, 그 소망이 되도록 늦게 실현되기를 바라게 되는 건 관객의 욕심일까.

UBC 35주년 기념 공연 '발레 심청'은 13일 막을 내린다.

'발레 심청'이 빚어낸 절절한 한국적 아름다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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