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라'와 '녹두꽃'으로 본 최근 트렌드
사극, 실존에 상상 더하고 중심은 주류서 비주류로
정통 대하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이어진 역사드라마 트렌드가 최근에는 정통 사극의 분위기에 '빗겨보기'를 더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동학농민운동을 배경으로 삼은 SBS TV '녹두꽃'은 제목부터 녹두장군 전봉준을 연상케 하지만 주인공은 서로 다른 길을 택한 가상의 이복형제였다.

전라 고부군 관아 이방 백가(박혁권 분)의 막내 이현(윤시윤)은 조선의 메이지유신을 꿈꾸는 개화주의자였고, 장남이지만 서얼인 이강(조정석)은 과거의 죗값을 치르고 새 세상을 열기 위해 봉기한 농민군 별동대장이었다.

물론 극에서 동학운동을 끌어가는 리더는 전봉준(최무성)이었지만, 주된 스토리는 이복형제의 엇갈린 삶에 집중됐다.

가상의 두 젊은이는 모두가 아는 비극에 활력과 역동성을 더했고, 실존 인물 전봉준은 특유의 무게감으로 중심을 지탱하며 젊은 캐릭터들이 한바탕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사극, 실존에 상상 더하고 중심은 주류서 비주류로
최근 첫발을 뗀 JTBC 금토극 '나의 나라' 역시 조선 제1차 왕자의 난이라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주인공은 팽형인 핏줄의 서휘(양세종)와 사복시정의 차남이지만 서얼인 남선호(우도환) 역시 가상의 인물들이다.

여말선초, 위화도 회군을 선택할 태조 이성계(김영철)와, 건국 후 피바람을 몰고 올 태종 이방원(장혁)의 이야기는 '용의 눈물' 시절부터 닳고 닳은 소재다.

그만큼 익숙하고 때로는 지겨운 듯한 플롯이지만 동시에 각 나라 신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가장 인간의 본성과 흥미를 자극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작진은 이 묵직한 배경을 김영철과 장혁, 두 베테랑 배우에게 맡겨 소화하도록 하면서도 전면에는 '루키' 양세종과 우도환을 배치함으로써 젊은 시청자 취향에 맞는 극적인 요소와 스타일리시함도 확보했다.

'녹두꽃'과 '나의 나라'는 원톱이 아닌 두 남자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공통점도 보인다.

가상의 인물을 사극으로 끌어들이면서 발생할 수 있는 허술한 부분을 복수의 인물과 그에 따른 대립 구도로 채우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아울러 과거 사극 속 주인공들은 말 그대로 역사에 기록된 주류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서얼 등 사회의 '비주류'를 내세우는 경향이 강하다.

평등과 정의에 대한 메시지를 강조하는 요새 트렌드에 부합하기에도 더 좋은 방법이다.

사극, 실존에 상상 더하고 중심은 주류서 비주류로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최근 저서 '역사 드라마, 상상과 왜곡 사이'에서 "사극은 기술(記述)된 상상의 역사이고, 작가는 구성된 역사의 흔적들 가운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선택해 허구를 만들어낸다"며 "역사의 소환과 재현방식이 사극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재배열된 맥락 속에서 시대 의식이 내면화된다"고 적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12일 통화에서 "초창기 사극은 주로 역사를 전달하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상상력의 세계로 넘어왔다.

역사적 틀 안에서 나오는 사극이 가진 한계 때문이기도 하고, 역사에 대한 시각이 바뀐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에는 과거 역사는 권력자들의 시각에서 쓰인 만큼 기록에서 소외된 존재들이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며 "그래서 상상력을 통해 역사 바깥에 있는 서민들을 중심으로 가져오면서 사극의 경향도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