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베이컨부터 푸코까지…유럽 근현대 지성사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가 쓴 <지식의 세계사>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유럽 근현대 사상의 연속적이면서도 단절적인 특징을 총체적으로 탐구하는 통사(通史) 성격의 학술 교양서다. 17세기 초반~20세기 후반 유럽에서 발생한 주요 사상운동의 특징과 그것이 현재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핀다.

출발점은 프랜시스 베이컨, 종착점은 미셸 푸코다. 이 책의 주제인 ‘사상적 근대성’을 베이컨이 탄생시켰고, 푸코가 해체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고대와 중세의 시대정신과 구분되는 근대적인 사고 방식의 특징으로 종교적 세계관의 탈피와 세속화, ‘생각하는 인간 주체’라는 개인의 등장,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의 추구, 낙관적인 진보사상 등이 꼽힌다. 저자에 따르면 “아는 것이 힘이다”는 베이컨의 주장은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자연의 정복자’로서의 근대인이 탄생했다는 선언이었다. 푸코는 베이컨의 이 명제를 뒤집었다. 인간과 자연에 관한 과학기술적 지식의 축적과 확장이 ‘인간의 사망’과 휴머니즘의 종말로 귀결됐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유럽 근대 지성사에서 현대 지성사로 바뀌는 분수령에 우뚝 선 프리드리히 니체를 기준으로 앞쪽에 볼테르, 콩도르세, 생시몽, 콩트, 벤담, 밀 등 18세기 계몽주의와 19세기 실증주의·공리주의 사상가들을 배치한다. 뒤쪽에는 ‘신의 사망’ 선포 이후 활약한 베버, 프로이트, 루카치, 그람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마르쿠제를 놓는다. 저자는 이들이 ‘발명’한 사상의 주요 내용과 특징 및 유산을 설명·비평하며 근대성·계몽주의의 잉태·성장·절정·위기·해체·몰락을 일관성 있게 서술한다. 그들의 주요 저작에 스며 있는 오리엔탈리즘과 가부장적 사고 방식도 틈틈이 지적한다. 유럽 근현대 사상의 서구·남성 중심주의를 탈(脫)식민주의와 젠더의 관점으로 수정·보완해 균형을 잡기 위해서다.

이 책이 소환한 사상가의 면면에서부터 저자의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오늘날의 세계에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서구 근현대 사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감하며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책이다. (휴머니스트, 416쪽, 2만1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