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황제에 힘 실어준 쌀, 자본주의 씨앗 된 밀
그리스의 땅은 척박했다. 국토의 80%는 산이고 평지는 석회암 토양이었다. 밀보다는 보리 농사에 적합했다. 힘들게 땅을 개간하던 그리스 소농들은 참정권과 재산권을 요구했다. 검은 보리빵이 주식인 그리스인들이 밀로 만든 흰 빵을 먹으려면 바다로 나가야 했다. 보리가 주식이던 가난한 그리스는 밀을 먹던 부유한 제국 페르시아에 이겼다.

<음식 경제사>는 아테네에서 왜 민주주의가 싹텄고 페르시아전쟁에서 그리스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보리로 설명한다. 언론사에서 일하다 뒤늦게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난 저자는 음식으로 역사의 흐름을 풀어낸다. 책은 1만 년 전 쌀과 밀, 옥수수 재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먹는 것에 따라 다른 경제사와 사회사가 펼쳐진다.

저자는 “인간의 역사는 음식을 확보하려는 투쟁의 역사, 음식을 주고받으며 이룬 교류의 역사”라며 “종교적 윤리나 문명의 충돌 등 이분법적 접근법에서 벗어나 국가나 지역별로 경제 발전 과정이 달랐던 본질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서술한다.

보리가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면 쌀은 황제를 만들었고, 밀은 자본주의의 씨앗이 됐다. 진시황이 만리장성과 아방궁을 만들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쌀의 생산력과 쌀농사가 이끈 관개 사업 덕분이었다는 설명이다. 빵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한 로마는 빵의 원료인 밀을 확보하려 전쟁을 벌였다. 인구는 늘었고 빵은 늘 모자랐다. 유럽은 밀의 부족에서 자본주의의 기반인 부의 법칙을 깨달았다. 후추와 설탕에서 시작한 노예무역이 커피와 목화, 고무와 차로 확대돼 가는 과정, 정육 포장이 대량생산과 분업 등 제조 공정에 미친 영향, 청어가 은행과 주식시장 탄생의 배경이 된 연유도 흥미롭다. 미국식으로 표준화된 코카콜라와 맥도날드의 등장을 ‘소비자의 시대’로 해석하고 금융 위기와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의 관련성도 설명한다.

인류 역사가 음식을 따라 움직였음을 보여주는 교양서로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지나친 단순화와 일반화는 경계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권은중 지음, 인물과사상사, 312쪽, 1만5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