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리트 히긴스 전기 '전쟁의 목격자'
한국전쟁 누빈 미국 여성 종군기자의 삶
한국전쟁 당시 전쟁 발발 이틀 만에 한국에 들어와 6개월간 전쟁터를 누빈 미국 여기자가 있었다.

종군기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으며, 한국전쟁을 취재하고 쓴 '자유를 위한 희생'으로 1951년 퓰리처상 국제 보도 부문에서 여성 최초로 수상한 마거리트 히긴스(1920~1966)다.

그의 치열한 삶을 그린 전기 '전쟁의 목격자'가 번역 출간됐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앙투아네트 메이가 쓴 이 책은 히긴스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았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을 함께하며 그 상황을 전 세계에 보도하는 등 종군기자로 대활약한 히긴스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히긴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 대피소에서 만난 아일랜드 출신 아버지와 프랑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 버클리대학과 컬럼비아대학원을 나온 하긴스는 스물두살에 뉴욕헤럴드트리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빼어난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그는 야망과 열정도 남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콩고내전, 베트남전쟁에 종군기자로 뛰어들어 수많은 특종과 현장감 넘치는 기사를 타전했다.

히긴스는 한국전쟁 이전부터 당시 세계의 관심 밖이었던 한국을 주목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임의로 분단된 독일처럼 기사가 될 잠재력이 있음을 알아챘다.

그는 극동아시아 특파원으로 도쿄에 머물던 1950년, 사상 첫 총선거 직전 한국을 찾았다.

당시 한국은 38선으로 남북이 나뉘어 있었다.

히긴스는 트리뷴에 송고한 기사에서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한국과 자유 한국 사이의 경계선이 되어 버린 위도 38도는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연립정부 수립이 불가능하다는 게 러시아와 미국 양쪽 모두에게 분명해졌을 때, 이 위도선은 총과 철조망이 빼곡한 영구적인 장벽으로 변했다"고 썼다.

이 책 저자 앙투아네트 메이도 남북 분단에 대해 "한국의 정치 상황을 깡그리 무시한 지리상의 분할은 전적으로 미국과 소련 간 적대의 결과였다"며 "이 열강들이 뒤로 물러나 있었다면 한국은 분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이 남침하자 히긴스는 다시 한국에 왔다.

미군의 참전이 결정되기도 전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인 장사상륙작전을 다룬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서 메간 폭스가 연기한 매기는 히긴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캐릭터다.

히긴스는 장성이나 고위 장교만 따라다니는 종군기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병사들과 함께 전투를 치르듯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을 뛰어다녔다.

한국전쟁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히긴스가 쓴 상륙 기사는 트리뷴 1면에 실렸다.

긴박한 작전 상황이 펼쳐진다.

"함포와 비행기가 치명적이고 꾸준하게 포격을 퍼부었는데도 살아남은 북한군들은 해변 가까이에서 소형 화기와 박격포로 우리를 괴롭혔다.

심지어 그들은 내륙 쪽으로 방파제 뒤편에 흐르던 도랑을 기어오르려는 우리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다.

"
흔히 해병대를 '귀신 잡는 해병대'라고 말한다.

이것도 히긴스가 기사에서 '그들은 귀신도 잡을 수 있겠다'고 쓴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히긴스는 전쟁터에서 홀로 또 하나의 싸움을 치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고 차별받은 시대, 히긴스는 여성 종군기자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모의 여기자'라는 수식어는 오히려 걸림돌이 됐지만, 히긴스는 어떤 남성보다도 뛰어난 성취를 보였다.

"이 책은 한 기자와 그녀가 살았던 시대에 관한 이야기"라는 저자의 소개처럼, 책에는 한 강한 여성의 인생과 그가 본 가슴 아픈 전쟁의 역사가 교차한다.

생각의힘. 손희경 옮김. 436쪽. 1만6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