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라 론디네' 국내초연 리뷰
푸치니 비인기작을 새롭게 빛낸 성공적 '라 론디네'
'라 보엠', '나비부인', '토스카', '투란도트' 등 베르디 못지않게 우리나라에서도 작품이 자주 공연되는 푸치니지만, 그의 1917년 초연작 '라 론디네(La Rondine·제비)'는 오페라 애호가가 아닌 관객들에겐 제목부터 낯선 작품이다.

올해로 17회에 접어든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이 오페라를 한국에서 초연하는 용기를 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2회 공연 중 지난 19일 첫 공연은 매진, 21일 공연은 객석점유율 82% 중 유료 관객 비율 약 92%를 기록했다.

이번 프로덕션은 세계적인 테너 롤란도 빌라존이 2015년에 베를린 도이체오퍼에서 연출해 "키치와 클리셰로 폄하된 푸치니의 작품을 성공적인 연출을 통해 최고의 작품으로 복원", "아름다운 미장센과 효율적인 콘셉트" 등 뜨거운 찬사를 받은 프로덕션이다.

이처럼 검증된 프로덕션을, 검증된 성악진으로 공연한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면서 한국 오페라 애호가들의 관심 또한 모을 수 있었다.

'라 론디네'는 장르는 오페라지만 처음부터 대본과 작곡 모두 오페레타의 성격을 띤 작품이었다.

그만큼 일반적인 오페라보다 연기와 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번 대구 공연에서 여주인공 '마그다' 역을 노래한 루마니아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는 음색의 변화로 기쁨과 도취, 당혹감과 불안 등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명징한 발성으로 푸치니의 우아한 선율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 파사로이우는 이 배역으로 볼로냐에서 데뷔했다.

코티잔(상류사회 남자들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정부로 살아가는 여성)인 마그다를 순진한 처녀로 알고 사랑했다가 이별의 아픔을 겪는 남자주인공 '루제로' 역은 이탈리아 테너 레오나르도 카이미가 맡아 관객들의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

'나비부인'의 핑커튼 등 푸치니 주역으로 유럽에서 잘 알려진 카이미는 선명한 고음과 강렬한 호소력으로 루제로의 절망을 나타냈다.

진지한 사랑을 하는 주역 커플 곁에서 가볍고 즉흥적인 사랑을 나누는 마그다의 하녀 '리제트' 역의 알렉산드라 허튼, 그리고 시인 '프뤼니에' 역의 테너 조반니 살라는 배역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경쾌하고 희극적인 연기를 펼쳤다.

조역 가수들과 합창단, 무용단, 연기자들 역시 활력 있는 가창과 적극적인 연기로 1막 파티와 2막의 떠들썩한 뷜리에 클럽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살렸다.

푸치니 비인기작을 새롭게 빛낸 성공적 '라 론디네'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위해 조직된 디오오케스트라는 이탈리아 지휘자 주세페 그라치올리를 맞이해, 빌라존이 묘사한 대로 "봄날의 강물처럼 흐르는 '라 론디네'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유연하고 매끄러우면서도 극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관객이 가수들의 노래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해줬다.

특히 잠시 쉬어가는 음악적 여백의 장면들이 효과적이었다.

르네상스 화가인 티치아노의 걸작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무대 전면에 펼쳐놓은 것은 빌라존의 기발한 착상이었다.

침대에 누워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비너스의 도발적인 시선은 코티잔의 관능미에 상응한다.

그러나 이 완벽한 아름다움은 2막 뷜리에 클럽에서 여러 개의 거울 벽면으로 분할되어 사라진다.

클럽에서 만난 순수한 남자주인공에게 빠져들면서 코티잔의 삶을 청산하려 하는 여주인공의 내적 분열을 상징하는 듯하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루제로의 청혼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마그다가 '제비처럼' 다시 부유한 후원자의 품으로 돌아가는 3막에서 관객은 르네 마그리트 스타일의 그림을 전면에 보게 된다.

그리고 하늘과 구름으로 채운 그 그림 속에는 비너스가 텅 빈 실루엣으로만 남아 있다.

마그다가 떠나가기 때문이다.

1막부터 계속 등장하는 흰 가면을 쓴 세 남자는 과거 마그다의 연인들로 추정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떠나가는 마그다가 루제로에게도 그 가면을 씌워, 그를 '익명의 과거 연인'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마그리트의 작품 '연인'처럼, '낭만적 사랑의 순간적 도취'가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다소 냉소적인 연출가의 해석이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한글 자막이었다.

원문의 내용을 정확하게 살리지 못한 단어들이 가끔 눈에 띄었고, 관객이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표현들을 직역한 부분들도 있었다.

오페라 관객은 번역자막으로 처음 이 작품의 내용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푸치니 비인기작을 새롭게 빛낸 성공적 '라 론디네'
rosina@chol.com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