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언어와 감정의 연결고리 촘촘히 그려
'사랑의 끝' 문소리 "감정 쏟아내며 해방감 느꼈다"
"너는 시체의 살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아. 저기요, 죄송한데 훌쩍거리지 말래요? 우리는 정말 맞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남자가 오장육부에서 짜낸 독설을 상대 면전으로 날린다.

언어에도 형상이 있다면 날카로운 칼보다는 묵직한 투포환에 가까웠을, 파괴적인 비난들.
"난 네 생각 속에 가득한 그 천박함이 익숙해지지가 않아. 넌 별 볼 일 없는 탈영병이야. 우리 사랑을 감당할 역량이 아니야."
여자가 흰자위를 드러내며 온몸으로 외친다.

발을 구르고 삿대질을 한다.

음절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은 무자비한 공격들.
프랑스 극작가 파스칼 랑베르 연극 '사랑의 끝'이 오는 7일부터 국내 초연된다.

2011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30여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공연 중이다.

전반부는 남자, 후반부는 여자의 긴 독백만으로 이뤄진 파격적인 구성이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연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배우 문소리(45)는 여자를, 지현준(41)은 남자를 연기한다.

영화 '박하사탕'과 '오아시스'를 통해 문소리를 알고 있던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은 2016년 한불합작 연극 '빛의 제국' 때도 두 사람과 함께 작업했다.

'사랑의 끝' 문소리 "감정 쏟아내며 해방감 느꼈다"
문소리는 6일 성동구 성수동 우란2경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한 사람당 40쪽이 넘는 대본을 나흘 만에 외워야 했다.

가능한 일일까 싶었고, 한 시간 동안 (혼자) 말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며 "그런데 사실 굉장히 행복하다.

현실에서 이렇게 다 쏟아내고 퍼붓는 경험이 쉽지 않은데, 무대에서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지현준도 "오랜만에 연극 냄새가 나는 작품을 할 수 있어 기쁘다.

맨몸으로 승부한다는 느낌이 좋다.

마이크도 없고, 소품도 없이 몸뚱이만 나와서 쏟아내는 말이 가장 연극에 가깝다고 느껴진다"고 거들었다.

노지시엘 연출은 이 작품이 이별의 '과정'이 아닌, 이별의 '순간'을 담은 공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작품은 꽤 독특한 방식으로 헤어짐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는 이별 전후로 짧은 순간만 묘사되지만, 이 연극은 두 사람이 헤어져서 각자 갈 길을 가는 '순간'을 보여준다.

마치 사고 현장을 목격하는 느낌일 것"이라고 했다.

'사랑의 끝' 문소리 "감정 쏟아내며 해방감 느꼈다"
작품은 치밀한 대사로 언어와 감정의 상관관계를 파고든다.

독백은 시종일관 논리정연하지 않다.

감정의 움직임에 따라 의기소침해졌다가, 부풀렸다가, 폭발했다가를 거듭한다.

노지시엘 연출은 "언어와 감정에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다.

'사랑해' 라고 말하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헤어질 때를 떠올려 보면 '그래 끝났네 안녕' 식으로 되지 않는다.

내 얘기에 스스로 북받쳐서 상황이 과하게 진행되기도 한다"라며 "그런 의미에서 이 공연은 말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문소리는 "열흘간 프랑스어 대본을 우리말로 바꿨다.

프랑스에서는 어떤 사람이 어떤 경우에 이런 표현을 쓰는지, 언제 생긴 단어인지 꼼꼼히 파고들었다"며 "그 과정에서 말을 먼저 하고 감정이 생기는 것인지, 감정이 생긴 뒤 말을 하게 되는지 고민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독백으로 구성된 2인극이라는 독특한 형식처럼, 무대 구성도 평범치 않다.

특별한 장치 없이 공연장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실험을 시도한다.

업무상 동료이자 연인으로서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한 두 사람의 관계처럼, 무대는 연습실과 공연장 간 경계가 모호하다.

한쪽에는 이탈리아 화가 마사초(1401∼1428)의 그림 '낙원에서의 추방'이 사랑의 종말을 대변하듯 세워져 있다.

사랑이 만든 천국에서 이들도 추방당한 것이다.

공연은 7∼27일 성동구 성수동 우란2경. 관람료는 전석 3만원.
'사랑의 끝' 문소리 "감정 쏟아내며 해방감 느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