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세종, 1446’
뮤지컬 ‘세종, 1446’
국내 창작 뮤지컬 가운데 전통 사극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극이라 하더라도 ‘명성황후’ ‘영웅’ ‘신흥무관학교’처럼 갈등 구조가 뚜렷한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이 대부분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해당 지역의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제작해 올리는 사극 뮤지컬은 대부분 1회성 단기 공연에 그친다. 소재와 서사 구조 등에서 장기 흥행할 만한 대중성과 상업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 여주시와 공연제작사 HJ컬쳐가 함께 만든 ‘1446’은 이런 점에서 예외적인 작품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2017년 1주일간의 여주 트라이아웃(시험) 공연을 거쳐 지난해 10월 서울 무대에 입성해 약 2개월간 인기리에 상연됐다. 왕이 될 수 없었던 충녕이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한글 창제 당시 느낀 고뇌를 입체적으로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으며 사극 뮤지컬의 새바람을 불러왔다.
한승원 HJ컬쳐 대표가 다음달 3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세종, 1446’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한승원 HJ컬쳐 대표가 다음달 3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세종, 1446’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이 작품은 이런 인기에 힘입어 ‘세종, 1446’이란 이름으로 다음달 3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무대에 다시 오른다. 이 작품의 흥행 성공은 설립 7년 만에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의 산실로 자리매김한 HJ컬쳐의 제작 능력 덕분이라는 평가다. 한승원 HJ컬쳐 대표는 “이전 작품처럼 주인공의 결함과 아픔에 초점을 맞추며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한 대표는 2012년 HJ컬쳐를 설립해 본격적인 공연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무대에 올린 작품은 15편이다. ‘빈센트 반 고흐’를 시작으로 ‘라흐마니노프’ ‘파리넬리’ ‘살리에르’ ‘파가니니’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 예술가의 이야기를 무대화해 주목받았다. 그는 “창작 뮤지컬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세계에도 통할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며 “이를 충족하는 동시에 클래식 연주 등을 통해 라이브 공연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많이 다뤘다”고 설명했다.

‘세종, 1446’은 이런 패턴에서 벗어난 작품이다. 해외 유명 예술가가 아니라 국내 왕의 이야기다. 그런데도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우리만의 색채를 갖고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더라고요. 작품을 본 일본 관계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 판매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판소리와 시조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 제작에도 나선다. “판소리와 시조를 하나의 뮤지컬 음악 장르로 만들어낼 겁니다. 우리 것이니까 무조건 한다는 게 아니에요. 그 자체로 세계 어디에도 내놓을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2016년 초연한 ‘리틀잭’을 통해서도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4인조 밴드와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올해 세 번째로 무대에 오를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꾸준히 ‘싱얼롱(관객들이 노래를 함께 따라 부름) 데이’ ‘커튼콜 데이’ 등을 열어 관객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OST 앨범도 사전 발매했다. 이 덕분에 관객의 참여도가 크게 늘었다. 첫 장면이 대표적이다. 공연은 시작과 함께 밴드가 관객들을 향해 ‘첫곡 불러드릴게요’라고 말한다. 이미 잘 알려진 밴드로 설정돼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알아서 반응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연 땐 사람들이 이를 잘 알지 못해 낯설어했다. 한 대표는 “이젠 입소문이 나면서 관객들이 첫 장면부터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며 “관객에 의해 완성되는 공연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 친화적인 작품과 서비스를 더 많이 선보일 계획이다.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가입한 무료 회원 수가 1만 명에 달합니다. 이들이 보고 싶은 공연을 먼저 선택하고 후원하는 자체 크라우드 펀딩을 강화할 겁니다. 또 ‘팔고 싶은 뮤지컬’이 아니라 관객이 진정 원하는 걸 주는 ‘사고 싶은 뮤지컬’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