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호연 빛난 연극 '오만과 편견'
배우는 달랑 두 명이다.

스무 개가 넘는 캐릭터를 단지 대사의 힘으로 소화한다.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며 무대를 맥락 없는 인해전술로 채우는 작품들을 떠올리면, 오롯이 집중하게 만드는 이 작품이 더 반갑다.

27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막을 올린 연극 '오만과 편견'은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의 명작을 각색한 작품이다.

소설 출판 200주년을 기념해 2014년 영국에서 유쾌한 2인극으로 거듭났다.

국내에서는 올해가 초연이다.

잘 알려진 대로 엄청난 사건이나 심각한 주제를 다룬 연극은 아니다.

청춘남녀가 사랑을 시작할 때 느끼는 설렘, 그러다 생기는 오해, 다시 사랑을 확인하는 화해 과정을 재치 있는 대사로 풀어냈다.

로맨틱 코미디의 시초로 불릴 만하다.

극은 19세기 영국 시골 마을 롱본에 젊고 부유한 신사가 이사 오고, 딸들에게 좋은 남편감을 찾아주는 것이 인생 목표였던 베넷 부부가 딸들을 결혼시킬 계획을 세우며 출발한다.

예쁘고 똑 부러졌지만 편견에 사로잡힌 둘째 딸 '엘리자베스', 잘생기고 속 깊지만 오만한 청년 '다아시'의 애정 싸움을 따라가는 게 골자다.

결혼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유가 상대방의 가문, 재산, 명성 같은 외적 조건이었던 당시 시대상은 지금도 흔히 마주치는 문제이기에 낯설지 않다.

첫 공연에서 정운선·윤나무 두 배우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조그만 원형 무대를 2시간 30분간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지탱한 연기가 돋보였다.

정운선은 당찬 '엘리자베스'부터 호들갑스러운 '미세스 베넷', 철부지 '리디아'를 능청스럽게 넘나들었다.

서양인처럼 보일만 한 어떤 분장도 하지 않았음에도 섬세한 표정과 사랑스러운 목소리는 그를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갓 튀어나온 영국 여인처럼 보이게 했다.

윤나무는 연기파 배우답게 흠잡을 데 없는 코믹 연기를 펼쳤다.

그가 멋진 '다아시'를 연기하다 돌연 청순가련 미녀 '제인'으로 변신할 때면 관객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함께 호흡하는 상대 배우까지 빛나게 하는 호연이었다.

또한 손수건이나 안경, 곰방대 등 간단한 소품으로 성별과 연령대를 뛰어넘는 배역 수십 개를 창조한 박소영 연출의 연출력도 높이 평가할 만했다.

'엘리자베스'를 주축으로 한 A1 역은 정운선과 김지현이, '다아시'를 주축으로 한 A2 역은 윤나무, 이동하, 이형훈이 번갈아 맡는다.

각기 다른 개성의 배우들이 어떤 색깔의 '오만과 편견'을 만들어낼지도 관심사다.

관객들은 행복한 흥분을 안고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10월 20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사랑스러운 호연 빛난 연극 '오만과 편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