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미니멀아트 선구자'
美 프레드 샌드백 회고전

28일 갤러리 현대에서 막올라
절제미 추구한 작품세계 조명
1960년대 미국 화단에는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가 동시에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미니멀아트가 서서히 고개를 내민다. 미니멀리즘은 최소한의 조형 수단을 활용해 제작된 미술 장르를 가리킨다. 형태나 제작과정이 지극히 단순하고, 작품의 배열과 작업원리에서 다소 개념적인 측면이 강하다. ‘가장 간단한 형태가 가장 미학적’이란 사실에 주목하며 사회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의미가 어떻게 예술품과 관계되는가를 보여준다.

196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점차 미니멀리즘의 단순함, 엄격함, 재료의 단단함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지적인 상황을 추구하는 이른바 ‘포스트미니멀리즘’이다. 포스트미니멀리즘은 상황적 설치미술, 제작 흐름을 중시한 과정미술, 난해한 개념미술, 대지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며 국제 미술계를 지배했다.

오방색 실로 공간 분할…'보이는 너머의 세상'을 조각하다

2003년 작고한 미국 미술가 프레드 샌드백(사진)은 미니멀리즘에 예술적 뿌리를 두면서도 이와 차별화한 포스트미니멀리즘의 개척자로 꼽힌다. 그는 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공간에 색색의 실을 수평과 수직 또는 대각선으로 길게 설치해 기하학적 형태의 실 조각을 탄생시켰다. 초기에는 철사, 고무줄, 밧줄로 부피와 경계가 명확한 정육면체나 직육면체의 구체적인 다각형 조각을 제작했다. 이후 아크릴 실을 사용해 물리적 공간을 탈피한 개념적 조각으로 점차 전환했다.

오는 28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개막하는 샌드백의 회고전은 지난 40여 년 동안 극도의 절제미를 추구했던 작가의 포스트미니멀리즘 경향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자리다. 프레드 샌드백재단의 후원을 받아 한국의 전통 색상인 ‘오방색(황·청·백·적·흑)’을 테마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실 조각 19점을 비롯해 드로잉과 판화 등 모두 29점이 나온다. 대학원 시절부터 말년까지 제작한 대형 작품은 물론 에스파스 루이비통(파리), 무담 룩셈부르크(룩셈부르크 시티), 유맥스미술관(멕시코 시티), 베니스비엔날레(베네치아) 등 유명 미술관 출품작도 감상할 수 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프레드 샌드백의 ‘무제’를 감상하고 있다.  /갤러리 현대 제공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프레드 샌드백의 ‘무제’를 감상하고 있다. /갤러리 현대 제공

뉴욕현대미술관이 선택한 작가

예일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한 샌드백은 뉴욕 드완갤러리와 독일 랑게하우스미술관 개인전을 통해 국제 화단에 첫발을 내디뎠다. 1978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을 치른 그는 단조로운 선으로 공간적 부피감과 지각적 환영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아 단번에 스타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뉴욕의 디아미술재단 후원으로 매사추세츠주 윈첸던의 옛 은행 건물에 자신의 이름을 딴 프레드샌드백미술관도 개관했다. 극도의 관념성을 강조한 그의 조형 미학은 휴스턴현대미술관(1989), 스톡홀름쿤스트홀(1991), 디 아 비콘(1996) 등에서 차례로 전시되며 세계 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실제로 그는 그리거나 조형화하지 않는다. 몇 가닥의 실과 금속선 등을 공중에 매달거나 빈 공간에 배열하는 게 전부다. 윤곽만 드러내는 실은 최소한의 부피로 단순한 ‘조각’을 넘어 ‘공간’이 될 뿐이다. 시시각각 자태를 바꾸는 실은 단순한 외양과는 달리 관람객에게 복합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구겐하임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대영박물관, 퐁피두센터, 휘트니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다투어 소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간 분할한 오방색 실 조각

전시장에는 눈과 귀의 감각을 확장해주는 오방색 실 작품이 즐비하다. 빨강, 노랑, 파란색 실로 꾸민 삼각형 기둥 작품은 지하 공간에서 1층 천장까지 연결되며 전시장의 공간 구조에 최적화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L자 모형의 실 조각 작품은 3차원 공간에 사람들의 생각과 상상은 물론 보이는 것 너머의 세상까지 아울렀다. 거리의 보행자처럼 발걸음을 이리저리 옮기다 보면 신선한 피돌기와 뇌호흡을 느낄 수 있다.

1996년 무렵 제작해 처음 공개한 ‘무제’는 흰색 실에 검은색과 노란색 아크릴 물감을 칠한 뒤 5개의 꼭짓점을 찍어 벽에 설치한 대작이다. 색선의 대비 효과가 관람객의 시각을 자극한다. 예일대 대학원 시절에 제작한 조각 ‘코너’, 10개의 붉은색 실로 구성한 작품, 흰 정사각형 두 개를 정렬한 작품, 놀이처럼 유희적인 매력이 넘치는 ‘픽-업 스틱’, 2차원과 3차원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드로잉 및 판화에서도 샌드백의 기발한 열정과 예술혼을 엿볼 수 있다. 전시는 다음달 6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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