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 과잉 점유가 한국사회 불평등 키웠다"
국내에서 불평등에 대해 얘기할 때 많은 학자가 ‘계급론’을 언급한다. 대중도 이들의 영향을 받아 계급적 관점에서 불평등의 원인과 현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계급이란 개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불평등의 세대>에서 ‘세대’라는 새로운 분석 틀을 제시한다. 한국 사회에는 ‘크게 다른 경험을 한’ 세대들이 있는데, 이 중 특정 세대의 세력화 과정에서 불평등이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먼저 각 세대를 1930년대에 태어난 ‘산업화세대’, 1960년대에 태어난 ‘386세대’, 1990년대에 태어난 ‘청년세대’로 나눈다. 그러고는 불평등의 주요 원인을 386세대에서 찾는다.

이 책은 이 교수가 지난 3월 ‘한국사회학’지에 실은 논문 ‘세대, 계급, 위계: 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를 바탕으로 한다. “386세대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과잉 점유 중”이라고 지적한 이 논문은 많은 전문가와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저자에 따르면 386세대는 위로부터의 산업화 전략과 권위주의적 통제 시스템을 민주화운동을 통해 일정 정도 몰아냈다. 이 같은 정치적 성과에 힘입어 많은 사람이 386세대가 주도하는 민주화와 세계화가 한국 사회에 더 공정하고 평등한 분배 구조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불평등 구조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청년 실업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경제적 격차는 커지고 있다. 이 세대는 도시로 이주했으나 어린 시절 농촌에서 경험한 신분제의 기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 교수는 “산업화세대로부터 이런 위계 구조를 물려받은 386세대는 도시로 나와 각 기업 안에서도 위계 구조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기업에서 이들의 권력은 더욱 강화됐다. 당시 산업화세대 대부분은 퇴출됐다. 반면 30대로서 기업의 밑바닥부터 중간 허리를 구성하고 있던 386세대는 살아남았다. 기업들은 이후 정규직 채용 비중을 크게 줄였다. 채용하더라도 장기 호황에 입사한 386세대에 비해선 훨씬 작은 규모였다. 이 교수는 “386세대는 졸지에 위아래가 모두 잘려나가면서 기업 조직에 사실상 홀로 남겨진 ‘거대한 세대의 네트워크 블록’이 돼버렸다”고 지적한다.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교수는 386세대의 ‘2차 희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주화운동이 1차 희생이었다면, 청년세대를 위해 자신의 몫을 조금 내어주는 것이 2차 희생이다. 이 교수는 “나를 포함해 상위 20%의 대기업, 공공 부문, 전문직에 해당하는 상층 정규직의 386세대는 임금 상승을 포기하고, 그 포기분만큼 고용이 이뤄지도록 ‘신규고용협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연금의 틀도 바꿔야 한다. 그는 “자신들이 낸 연금보다 더 과도한 수혜를 누리는 386세대의 소득대체율을 줄이거나 최소한 동결해야 한다”며 “이는 저출산 시대에서 어느 세대는 짊어져야 할 짐인데, 다음 세대에 부채를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