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 기념비 제막

러시아 우수리스크 기념관 설치
'애국의 혼 민족의 별 최재형' 새겨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최재형 선생(1860~1920)의 숭고한 애국혼을 기리는 기념비와 흉상이 현지에 세워졌다. 내년 선생의 순국 100주년을 앞둔 시점이라 기념비 건립의 의의가 각별하다.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이 12일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기념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오성환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  /서화동 기자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이 12일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기념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오성환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 /서화동 기자

12일 오후 4시 연해주 우수리스크 발로다르스카야 38번지 최재형기념관에서 ‘최재형 기념비 및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최재형기념관은 선생이 1920년 4월 일본 헌병대에 체포돼 순국하기 직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내부에는 1860년대 이후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와 최재형의 러시아 정착, 의병활동과 하얼빈 의거, 임시정부 참여 등의 이야기를 관련 사진 및 자료들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의 마당 한쪽에 세운 기념비는 선생이 생전에 그토록 소원했던 조국의 광복을 형상화했다. 비석 몸체를 한반도로 삼고, 그 위에 태극 문양을 또렷하게 새겼다. 비석 상단에는 ‘애국의 혼 민족의 별’이 한글과 러시아어로 새겨져 있다. 비석 앞에는 청동으로 만든 선생의 흉상이 서 있다. 넥타이를 매고 조끼와 재킷을 입은 모습인데 옛 사진과 후손들의 증언, 세밀한 감수를 거쳐 완성됐다. 특유의 콧수염과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 꾹 다문 입에서 독립의 결연한 의지가 읽히는 듯하다. 기념비와 흉상은 지난 3~6월 국내에서 기획·디자인·제작해 지난달 말 기념관에 설치됐다.

최재형은 연해주 한인 사회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의 대부였다.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 연해주 연추(얀치헤·현 크라스키노)로 이주해 일찍부터 무기와 식량, 의류 등의 군납 사업을 통해 연해주 최대의 부호로 성장했다. 번 돈은 모두 독립운동과 한인 동포 지원사업에 바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일찌감치 실천했다. 사람들이 그를 따뜻한 난로라는 뜻의 ‘최 페치카’라고 불렀던 이유다.

선생은 구한말 의병단체 동의회를 만들어 국내 진공작전을 펼쳤고, 독립운동단체 권업회 초대 회장 등을 맡아 물심양면으로 헌신했다. 연해주 일대 마을마다 30여 개의 학교를 세워 한인교육에도 앞장섰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지원한 이도 최재형이었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이토를 암살하기 전 최재형과 계획을 함께 짰고, 실행에 앞서 최재형의 집에서 사격 연습까지 했다고 그의 딸 올가의 회고록은 전한다.

노령임시정부의 전신인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 상하이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됐던 선생은 1920년 일본군이 저지른 ‘4월 참변’ 때 순국했다. 당시 일본군은 빨치산을 토벌한다며 연해주 일대 한인촌을 습격해 무차별 살상을 감행했다. 3·1운동 이후 대일 투쟁이 활발해지자 대대적인 보복에 나선 것이다. 4월 5일 끌려간 선생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3일 만에 우수리스크 외곽 사베스카야 언덕에서 다른 수백 명의 동포와 함께 총살돼 순국했다.

하지만 지금껏 시신도 찾지 못했고, 무덤도 없다. 1962년 정부가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지만 분단과 이념의 장벽 등으로 인해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다. 기념비와 흉상은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한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이 발의하고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국가보훈처, 외교부, 최재형 선생 후손과 각계 인사들이 뜻을 모아 건립했다.

이날 제막식에서 소강석 이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왜 우리는 독립운동의 대부이신 최재형 선생을 늦게 알고 이제 기념비를 세우게 됐을까”라며 “기념비 제막을 계기로 선생의 애국애족정신이 광야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최 선생의 손자인 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은 답사에서 “모든 후손을 대신해 최재형 선생을 알리는 데 힘써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최재형순국100주년추모위원회 공동대표인 소 이사장과 안 의원,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김니꼴라이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회장, 최발렌틴 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위는 내년 선생의 순국 100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함께 추모음악회, 국제심포지엄, 사진전,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우수리스크(러시아)=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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